벤치신세눈물펑펑…감독의한마디“변해라”

입력 2008-06-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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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박재홍(35)은 2008년 프로야구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타자 중 한 명이다. 9일까지 타율 0.368로 전체 1위이고, 장타율(0.644)과 출루율(0.453)은 2위다. 두 수치의 합인 OPS도 한화 김태균(1.100)에 이어 2위(1.097)다. 28연속경기 안타와 30연속경기 출루도 기록했다. 삼진과 볼넷(각 26개) 비율은 1:1이다. 기록의 질(質)이 좋다보니 출장 기회가 증가했다. 그 결과 성공률이 아닌 횟수로 세는 홈런(10개)과 타점(39점) 부문에서도 SK에서 유일하게 전체 10걸 안에 들어있다. 결승타점 8개는 전체 1위다. 92학번 동기인 박찬호(LA 다저스)가 그랬듯 35세가 넘어서 회춘한 느낌이다. SK 이세 타가오 타격코치는 “타자는 35살이 넘어가면 기술적 부분이 아니라 머리로 보충해야 된다. 여기서 머리란 상대 배터리의 공 배합을 읽고 부족한 부분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박재홍의 페이스가 작년보다 좋은 것은 머리 쓰는 야구, 즉 상황에 따른 볼 배합을 잘 짐작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지금까지 3할 타자 중 35세 이상은 박재홍 외에 박경완(0.302)이 유일하다. 박재홍에게 무슨 특별한 것이 있었기에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에 특급타자의 위력을 회복했을까. 박재홍은 무엇이 변했고, 어디가 변하지 않은 것일까? ● 박재홍은 변했다 “야구밖에 모르는 아이야. 야구장 밖 사생활은 모르겠지만 훈련을 시키면 요령 부리는 아이가 아니야. 거짓말을 안 해. 단순해. 팀에 융화가 되니 마음이 열렸어. 선수랑 얘기도 잘 하고. 타이밍을 찾았지. 되니까 여유가 생겼고. 스리 볼이면 예전 같으면 치러 들어갔을 텐데 고르더라고. ‘이놈 봐라’ 했지. 때려도 된다는 사인 줬는데.” 김성근 감독의 평가다. 연속안타 기록이 이어지던 5월 31일 대구 삼성전. 박재홍은 처음 3타석에서 볼넷을 얻었다. 규정상 전 타석 볼넷이면 연속안타 기록이 다음 경기로 이어지는 걸로 간주되지만 박재홍은 “몰랐다”고 했다. 그저 “팀이 이기려면 걸어 나갈 땐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박재홍은 4번째 타석에서 빗맞은 안타로 연속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박재홍의 안타는 6월 5일 문학 히어로즈전에서 끊겼다. 경기 전 “오늘 당장 끝날 수 있다”라고 개의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러나 박재홍은 “내일부터 다시 연속경기 안타를 시작하면 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 마인드 개조, 그리고 김성근 감독 SK 김성근 감독은 엄한 아버지다. 잘 한다고 칭찬하지 않고, 못한다고 꾸짖지 않는다. 특히 베테랑 선수에게 그렇다. 그저 지켜보고 마음에 안 들면 경기에서 빼버린다. 기회를 차단당한 선수는 김 감독의 의중에 부합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자새끼만 김 감독은 보듬고 간다. 여기엔 이름값이든 연봉이든 그 어떤 예외도 없다. 리틀 쿠바란 별명대로 아마 시절부터 최고였고, 현대 입단 후 30홈런-30도루만 3차례 달성한 박재홍이 김 감독 밑에선 벤치에 앉기 일쑤였다. 출장 기회가 줄어든 탓에 부상이 있었던 2004년 이래 처음으로 작년에 100안타도 치지 못했다. “플래툰은 처음이었다. 충격이었다. 처음엔 (감독님 의도를) 못 알아들었다. 올 시즌 들어와 ‘못 해도 괜찮다.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감독님 만나고 야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1경기 1타석이 악착같아졌다. 솔직히 김 감독님은 힘든 분이다. 어설프게 하면 바로 경기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플레이를 할 기회를 안 주는 거다. 스스로 느껴서 채우게 만든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기가 캐치해야 한다. 작년에 딱 한 번 감독님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 때 박재홍은 김 감독 앞에서 울었다는 전언이다. 김 감독은 자존심에 상처입고 신음하던 그를 안아주면서 “변해라”란 한마디만을 던졌다. 김 감독은 여전히 박재홍에게 별 주문이 없다. 박재홍도 더 이상 면담을 청하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점은 박재홍이 붙박이 중심타자로 기용되는 현실이다. 그리고 안 보이는데서 김 감독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박재홍은 그대로다 박재홍은 ‘올 시즌 들어와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주변의 평을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소리다. 솔직히 내가 봐도 할 건 하는 스타일이다. 현대 때 멋모르고 야구를 하다가 KIA로 가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리고 SK로 와서도 열심히 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자기를 알아주는 팀에 몸담아야 기를 폈다. 하긴 265홈런-243도루란 성적은 근면성실하지 않으면 범접할 수 없는 숫자다. 실제 박재홍은 취미가 별로 없다고 했다. 오직 야구에 대해선 “재미있으니까 지금까지 했겠죠?”란 반문이 돌아왔다. 다만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인 야구가 가능한지를 그는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터득했을 뿐이다. 변화가 아니라 진화일지 모른다. “지금은 출루율 개념을 갖고 야구를 한다. 자연스럽게 느끼게 됐다. 몇 년 전 ‘순간을 즐기라’는 말을 들었다. 그 땐 그 말뜻을 몰랐다. 어릴 땐 ‘다음에 하지’라며 쉽게 넘어간 부분이 있었다. 야구가 워낙 잘 됐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생각한다. 한 번 더 고민하면 더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박재홍은? 광주일고-연세대를 거쳐 1996년 현대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 30홈런-36도루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후 98년과 2000년에도 30홈런-30도루를 돌파했고, 홈런왕과 타점왕도 경험했다. 2003년 KIA로 이적해 고전했지만 2005년 다시 인천 연고인 SK로 옮겨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300홈런-300도루에 가장 근접한 타자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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