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프리토킹]“위협구는전술,빈볼은범죄다”…엄연히다른위협구와빈볼

입력 2008-06-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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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레이트에 지나치게 붙어서면 나의 어머니라도 맞히겠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대 투수 봅 깁슨이 한 말이다. 또 돈 드라이스데일은 “홈플레이트에 다가서는 선수는 매를 번다”는 식의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곤 했다. 사실 이들이 활약하던 1960년대, 그리고 과거에는 오히려 이런 발언이 터프함을 상징하거나 은근히 마초 기질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빈볼(Beanball)’은 야구에서 추방돼야할 요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빈볼’은 ‘위협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협구’는 말 그대로 투수가 타자를 상대하며 바깥쪽 공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타자의 몸쪽으로 바짝 붙는 빠른 볼로 타자를 홈플레이트에서 떨어지게 하는 투수의 무기 중 하나다. 이런 위협구와는 다르게 빈볼은 애초에 투수가 타자를 맞히겠다는 의도로 던져 실제로 맞히는 행위를 뜻한다. 투수가 기계는 아닌 이상 실투는 나오게 마련이고, 또한 몸에 맞는 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실투 상황과 어떤 이유건 맞히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다. 고의성 사구가 나오게 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빈볼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덕아웃과 불펜의 선수들이 뛰어나와 상대 팀과 몸싸움까지 벌이는 볼썽사나운 장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빈볼 전쟁의 극단적인 예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로저 클레멘스와 페드로 마르티네스라는 ‘빈볼의 대마왕’들을 통해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페넌트레이스 전반기 끝 무렵,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는 치열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양키스의 로저 클레멘스는 타석에 들어선 케빈 밀라를 빠른 공으로 맞혔다. 당연히 밀라는 화가 날 수밖에.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경기 후 인터뷰룸에 나타난 클레멘스 역시 화를 냈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화를 낸 이유는 이제 타자들이 몸쪽 빠른 공을 던져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미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위협구’는 투수에게 때론 훌륭한 무기가 된다. 홈플레이트 쪽으로 바짝 붙는 타자들에게 몸쪽 공을 던지기도 껄끄러울 뿐 아니라 바깥쪽 역시 타자가 커버를 할 수 있어 투수 입장에서는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공을 던지기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클레멘스가 밀라를 공으로 맞힌 또 다른 이유는 직접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전날 보스턴이 무려 7개의 홈런을 융단폭격하며 양키스 마운드를 유린한 데 대한 화풀이라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클레멘스는 다음에 보스턴을 상대할 때 중심타자 데이비드 오르티스가 절대 홈플레이트에 붙어서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다. 한마디로 직접 표현을 피했을 뿐이지 맞히겠다는 강한 경고였다. 결국 이런 감정들이 쌓여 그해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마르티네스는 카림 가르시아(현 롯데 자이언츠)와 호르헤 포사다에게 빈볼을 던졌고, 그 다음 이닝에서 클레멘스가 매니 라미레스에게 위협구로 생각되는 공을 던지자 바로 양 팀 벤치가 뛰어나와 육탄전이 벌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클레멘스의 이 투구는 빈볼로 보기에는 가운데로 몰린 감이 있었다. 하지만 클레멘스의 전력상 지레 맞힐 것으로 짐작한 라미레스의 과잉 반응이 그라운드 폭력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같은 해 보스턴과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도 연출됐다. 9회 캔자스시티의 마무리투수 마이크 맥두걸과 DJ 카라스코가 보스턴 타자 3명을 연속으로 맞혔고, 결국 밀어내기로 경기에 패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다음날 보스턴의 선발 케이시 포섬은 1회 상대 4번타자 등 뒤로 공을 던지다 바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상대방이 비신사적인 행위를 했을 때, 룰북에 존재하지 않지만 불문율로 지켜지는 것들을 깨뜨렸을 때 고의적으로 맞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흔히 말해서 이런 경계를 선수들이나 벤치에서 지키지 못한다면 바로 위와 같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맥두걸이나 카라스코 모두 컨트롤이 좋은 투수가 아니고 그 전에 뚜렷한 계기가 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3타자를 연속 맞혔다고 하지만 승리를 내주면서까지 고의적으로 보스턴 타자를 맞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포섬이 오버를 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같은 행동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천지차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때론 ‘위협구’ 가 전술로 활용되고 충분히 경기의 일부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빈볼’은 상대방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고 보복을 부르는 소모적인 감정의 표출이다. 경기를 이기려는 근성과 감정적인 오기는 분명히 같을 수 없다. 경기의 본질을 훼손하는 그 어떤 행동도 팬들에게는 오버일 뿐일 것이다. 송재우 | 메이저리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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