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유도박정민,암흑의파이터“절망도메쳤다”

입력 2008-09-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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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망막이상…銅결정전핏물줄줄‘눈물의한판패’
꿈이 있는 유도선수였다. 어릴 적부터 골목대장을 도맡았던 박정민(38)은 힘쓰는 일이라면 뭐든지 좋았다. 언제나 싱글벙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을 처음으로 실감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어느 순간 상대가 뿌옇게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간밤에 잠을 못자서”인 줄 알았다. 병원에서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카메라 필름과 같은 기능을 하는 망막의 이상으로 실명까지 이를 수 있는 병.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법이 없었다. 서서히 보이지 않던 눈은 대학에 들어오면서 더 어두워졌다. 영남대 2학년. 도복을 벗었다. 그리고 10년 넘게 암흑의 시절을 보냈다. 마음의 눈마저 닫혔다. 2003년 마침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박정민은 “역설적이게도 그 때 유도가 가장 그리웠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유도가 있다는 이야기가 한 줄기 빛. 다시 도복을 입었다. 그리고 아테네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했다. 9일 베이징 노동자체육관에서 열린 장애인올림픽 유도 남자 +100kg 동메달 결정전. 박정민은 절반 1개와 유효 1개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심판은 종료 10여초를 남기고 경기를 중단시켰다. 박정민의 입술과 코에서는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심판이 3차례 의료진을 부르면 한판패. 박정민은 “그런 규정이 있는 것은 맞지만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매달 30만원 하는 연금까지 허공에 흩어졌다. 억울함 때문에 그 날 밤 단 한 숨도 자지 못했다. “13살 난 딸과 5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꼭 메달을 바치겠다”며 이를 악물고 준비한 올림픽이었다. 장애인올림픽 유도에 참가한 한국선수는 박정민 뿐. 정식훈련도 45일을 앞두고 시작했다. 2006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합작한 조인호(한체대 교수) 감독의 도움으로 한체대와 보성고등학교의 일반유도선수들과 뒹굴었다. 눈물 반, 땀방울 반. 오전에는 러닝머신, 오후에는 스파링, 저녁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이 이어졌다. 박정민은 “편견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경기가 끝난 뒤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몸은 괜찮은 거야?” 피 묻은 도복으로 싸웠다는 소식을 이미 딸도 알고 있었다. 박정민은 “메달도 못 딴 아빠인데 평소 무뚝뚝하던 딸이 눈시울을 붉혀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박정민은 8월, 영남대 특수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 “유도는 시각장애인에게 특히 유용한 스포츠”라고 했다. 시각장애인에게 부족한 평형성과 공간지각능력을 키워준다. 낙법을 익히면 불의의 사고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도 있다. “제가 유도를 통해 새 삶을 얻었듯 장애인들에게 유도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비록 동메달을 놓쳤지만 마지막 한 마디는 금빛보다 더 반짝였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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