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반상에정원석놓기

입력 2008-09-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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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의 황병기 명인이 어느 인터뷰에선가 “서양음악이 벽돌을 쌓는 것이라면 우리 음악은 정원석을 배치하는 작업”이라 말한 기억이 있다. 씹을수록 오묘한 비유이다. 서양음악은 하나하나 쌓아올려야 가치를 발한다. 그래서 화성이 발달했다. 반면 우리 음악은 놓인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정원석을 세로로 쌓는 바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정원석은 정원 안에서 가장 미적으로 적절한 곳에 놓여져야 하고, 그것이 배석자의 실력이다. 바둑은 어떨까? 생각해 보니 바둑은 우리 음악을 닮은 듯 하면서도 서양음악의 발상과도 닿아있다. 분명 포석은 정원에 정원석을 배치하는 일이다. 드문드문 놓으면서도 각자의 돌은 제 위치에서 최대한 효율을 발한다. 바둑에서 ‘미학’을 논할 때에도 포석의 미학이 으뜸이다. 그런데 반상에 돌이 늘어나 몸싸움이 시작되면, 이때는 벽돌을 쌓듯 두어야 한다. 이쪽은 고이 쌓되 상대의 돌은 무너뜨려야 한다. 바둑의 근간은 역시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판의 바둑을 둔다는 것은 대지 위에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이다. 보면 볼수록 오묘하고 깊은 것이 바둑일지니. <실전> 백3이 목진석다운 은근한 도발이다. 이 수의 의도는 <해설1>이다. 흑이 1로 두면 백2로 가겠다는 뜻. 백이 딱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목진석이 원한 그림은 이것일 것이다. 선악을 떠나 상대가 원하는 대로 두어주기는 싫다. 윤찬희는 <실전> 흑4로 지켜 반발했다. 흑8로 뛴 수로는 <해설2> 1로 곱게 귀를 지켜둘 수도 있다. 물론 백은 2로 흑 한 점을 제압한다. 이것도 한 판의 바둑이다. 어차피 포석. 정원석 하나쯤 어디에 놓은 들 대세에 뭔 지장이 있으랴.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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