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총잡은스무살명사수이대명,불굴의영건…런던을쏜다

입력 2008-09-18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한국사격은 베이징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따내며 성공적인 올림픽을 치렀다. 2개의 메달은 모두 진종오(29·KT)의 것이었다. 아쉬운 점은 기대를 모았던 남자권총 이대명(20), 여자권총 이호림(20·이상 한체대), 여자공기소총 김찬미(19·기업은행) 등 젊은 선수들의 부진. 특히, 진종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이대명(20·한체대)은 진종오의 금의환향을 바라보며 더 가슴이 쓰렸다. 5일부터 11일까지, 태릉사격장에서는 제24회 회장기전국사격대회가 열렸다. 올림픽 이후 첫 국내무대에 선 이대명을 만났다. 이대명은 7일, 남대부 공기권총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학무대 최강자임을 확인했다. ○메달을 따면 카메라 앞에서 울지만, 못 따면 화장실에서 운다 8월9일, 베이징올림픽 남자공기권총 본선(60발·600점만점). 이대명은 4시리즈(40발)까지 1위를 달렸다. 같은 시각, 이대명의 의정부 집. 이대명 아버지의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금메달을 예감한 언론사들의 인터뷰요청 때문이었다. 잠을 설치며 기다리던 올림픽이었다. ‘제발 빨리 베이징사격장의 사대에 섰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딱 40발까지는.” 5시리즈. 이제 20발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메달이 아른거렸다. 41번 째 발이 틀어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1등. 9점, 9점. 계속해서 10점표적을 빗겨가자 마음이 조급했다. 평소 이대명은 16-18초 사이에 총알을 내보낸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신중을 기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하게 총을 내리고 다시 시작했다. ‘이렇게 쏘다가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닐까….’ 44발 째에서 1위가 바뀌자 여유는 다급함이 됐다. 결국 5·6시리즈에서 생애 최악의 20발을 쐈다. 시계를 봤다. 10분이나 남아 있었다. 멍하니 표적을 바라봤다. 조용히 총을 챙겼다. 그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이 초라했다. 한 방울이 떨어지자 그 다음에는 봇물 터지듯 주르르. 이대명은 “메달을 따면 카메라 앞에서 울지만 못 따면 화장실에서 운다”고 했다. ○넌 최고의 파트너 부르르 떨리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조용히 눈물을 닦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관중석에 앉았다. 결선에 진출한 진종오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은메달을 목에 건 진종오가 조용히 이대명을 감싸 안았다. “(이)대명아, 고맙다. 넌 최고의 파트너였다. 네가 있었기에 더 긴장하고,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참았던 눈물이 다시금 터졌다. “괜찮아. 넌 아직 어리니까, 너에게는 많은 기회들이 있단다.” 진종오 역시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6점대를 쏘는 실수를 범한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이대명의 마음을 잘 헤아렸다. 이대명은 진종오를 “존경한다”고 했다. 2006년 10월, 이대명이 남자공기권총사상 최연소로 태극마크를 단 이후 둘은 한 방을 썼다. 큰 대회를 앞두고 몸 관리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이대명은 사진 찍기 등 진종오의 취미까지 흡수했다. 이대명은 “(진)종오형은 총을 내려놓고 있을 때도 사격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 “사진 찍기와 낚시 등의 취미도 결국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공기권총본선에서 진종오의 5시리즈 성적도 좋지 않았다. 진종오는 5시리즈를 마치고 잠시 사대를 떠났다. 이대명은 “왜 그 때 (진)종오형을 따라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고 했다. 그것이 경험의 차이였다. 급할수록 한 번 더 심호흡을 하며, 돌아갔던 진종오가 결국 승자가 됐다. ○런던에서는 카메라 앞에서 운다 한체대 장갑석(한체대 교수) 감독은 “이대명은 완벽을 추구하는 선수”라고 했다. 10점을 쏴도 의도한 행위가 아니면 “아니야”라고 중얼거린다. 주변에서는 “넌 총 쏠 때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많이 하느냐”며 놀릴 정도. 올림픽 이후 열흘간의 휴가. 처음에는 다시 총을 잡기가 싫을 줄 알았다. 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허망했다. 하지만 “이제 부족한 점을 정확히 알기에 총을 더 잡고 싶다”고 했다. 이대명은 “60발에는 60개의 감정이 있다”고 했다. 10점의 기쁨, 9점의 아쉬움도 단일한 감정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가 있다. 실전에서 단 한 가지 상황이라도 낯설게 느껴진다면 총알은 빗겨간다. 마치 연기자처럼, 그 모든 상황에 몰입해 감정을 다스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실전에서 누구보다 냉정하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이대명은 “런던올림픽 때는 꼭 카메라 앞에서 울겠다”고 했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은 변명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겸허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4년 간 계속될 이미지트레이닝은 이대명의 키를 훌쩍 키울 것이다. 10월8일부터 베이징사격장에서는 제2회 세계대학선수권이 열린다. 쓰라린 실패를 맛보게 한 바로 그 곳에서 이대명의 부활일기는 시작된다. 좌절을 딛고 선 20세 청년의 총구는 내일을 향하고 있었다. 태릉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