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MS.박의라이브갤러리]공장서복제된‘오리지널’예술품

입력 2008-10-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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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전시를 기획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 판화는 몇 번째 에디션이에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에디션(edition) 번호는 판화를 몇 장 찍었는지 알려주는 번호다. 예를 들어‘3/100’이라는 표시가 작품에 적혀 있다면, 총 100장의 판화 중에서 3번째로 찍은 판화라고 보면 된다. 흥미롭게도 판화는 이러한 복제가능성 때문에 오랜 시간 순수 예술작품의 범주에 들지 못하였다. 판화는 활자나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 문맹률이 높은 민중에게 성서나 불경과 같은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렇게 생활에 쓸모 있음이 순수 예술의 범주에서 멀어지게 된 원인이 되었다. 사실 조각도 판화와 마찬가지로 에디션 번호로 그 가치가 평가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로댕의 브론즈(청동) 조각의 경우가 그렇다. 로댕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조수들을 통해 주조된 브론즈 조각들이 많았기 때문에 에디션 번호로 그 가치의 높고 낮음을 표시한다. 이렇게 예술 작품의 가치는 그것이 오리지널에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매겨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오리지널이라는 것 역시 시대에 따라 개념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특히 18세기 이후 사진이 사회에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판화의 복제 능력이 사진의 그것보다 정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폴 고갱은 일상에서 종교의 교리를 전달하는데 주로 복제되었던 판화를 회화처럼 독창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순수 미술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판화의 위상을 역전시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판화는 회화처럼 다시 오리지널 판화와 유사 판화로 나눠지게 되어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통 오리지널 판화는 작가가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한 판화를 말하고, 유사 판화는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이나 재단이 작가가 생전에 제작한 판에서 찍어낸 판화를 말한다. 기술복제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리지널에 집착하고, 그것을 시장에서 수십, 수백만 달러에 교환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앤디 워홀은 예견했다. 그는 단시간 내 수십 장을 찍어낼 수 있는 공판화(孔版畵) 기법인 ‘실크스크린’을 이용하되 그것을 찍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자국이나 실수를 남김으로써 판화에 오리지널이라는 유일성을 부여했다. 워홀은 이렇게 오리지널 예술작품이라는 이름표를 단 판화가 제작되는 장소를 아틀리에 대신에 ‘팩토리’(factory), 즉 공장으로 불렀다. 이 공장에서 탄생한 자신의 예술작품을 ‘상품’으로,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비즈니스 아트’(business art)로 부름으로써 오늘날 예술작품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데 열을 올리는 현대인의 군상을 미리 보여준 셈이 되었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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