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바둑이좋으면인심이후해진다

입력 2008-10-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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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휘청한다고 해서 바둑을 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먼저 실수를 한 쪽이 바둑을 이기는 경우가 많다. 이미 실수를 저지른 쪽은 마음을 비우기 때문이다. ‘이왕 버린 몸, 편하게 두어볼까’하는 심경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유리한 쪽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승리의 손수건이 저 멀리서 흔들리고 있다. 자꾸만 행마가 소극적이 된다. 그렇게 한두 번 후퇴를 하고 나면 어느새 바둑은 미세해지고, 그 바람에 행마는 더욱 어수선해져버리고 만다. <실전> 흑1로 따고 백2로 치니 흑3(백△)으로 이었다. 사실 흑은 <해설1> 흑1로 나가도 된다. 백에겐 미안하지만 대충 두어도 백은 죽을 것 같다. 백이 던져야 할 판이다. <실전> 흑1로 따낸 것은 박정상이 물러선 것이다. 너무 기분이 좋아 인심을 썼다. 바둑이 좋으면 인심이 후해진다. 일종의 부자 몸조심이기도 하다. <실전> 흑이 9로 나가 11로 끊은 수는 한 집반 이득이다. 백이 손해 보기 싫다고 <해설2> 백1로 이으면 흑에게는 2·4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백은 5로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저 빈삼각을 보라! 모양이 아니 좋거니와 뒷맛도 최악이다. 질 때 지더라도 프로가 이런 바둑을 둘 수는 없다. 박정상의 얼굴이 환해지고 있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4강전을 그리고 있다. 4강전의 상대는 이세돌 9단과 유창혁 9단 간의 승자가 될 것이다. 두 사람 역시 어디에선가 이 바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리라. 목진석이 흑15로 백의 두점머리를 쳤다. 호쾌한 순간이지만 손끝에 기운이 없다. 그 역시 패배를 읽고 있는 것이다.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글|양형모 기자 ra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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