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스포츠클럽]국내서도‘발효’하는야구인을보고싶다

입력 2008-10-19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특유의 괴벽으로 바보 같은 천재, 광인 같은 기인으로 불리는 예술가 이외수씨가 최근 출간한 책 속에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발효되는 음식이 있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썩을 수도 있고 익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노장 팻 길릭(73세)이다. 현재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단장인 그는 미국 야구계가 인정하는 유능한 단장으로 정평이 나있다.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그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후 필자가 미국에 짧게 들렀을 때 전화로 숨바꼭질을 10차례는 넘게 한 적이 있다. 어쨌든 그는 팀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면서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했다. 92-93년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최초로 월드시리즈 챔피언 트로피를 캐나다로 가져갔고 그 후 볼티모어, 시애틀, 필라델피아로 옮기면서 그가 남긴 족적이 매우 크기에 은퇴하려는 그를 다시 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가 시즌 전부터 은퇴를 밝혔음에도 그를 뉴욕 양키스의 자문역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뉴욕포스트> 기자의 주장처럼 그는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성적을 내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부패되기보다 발효되는 음식과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진솔함속에 거짓없는 대화와 친화력으로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면서 인정한 사람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스타일이 깔려있다. 그와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은 소속팀을 떠나 다른 팀에 근무해도 몇 십년간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 왜 그가 뛰어난 단장으로 평가 받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좋은 네트웍을 보유하면서 끊임없는 정보를 올바른 사람으로부터 받고 있으니 투자대비 효율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보스턴의 테오 엡스타인,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맨 등 젊은 단장들이 등장하면서 흐름이 바뀌는 추세였다. 그러나 길릭에 대한 재평가는 인간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귀감이다. 은퇴하려는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은퇴나 용퇴를 해주었으면 하는 주위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일 수 있어 그의 이야기는 신선하다. 그는 뉴욕 양키스 마이너리그 선수 출신이다. 그리고 좋은 선수가 있다면 어디든, 누구에게든 달려가는 인물이다. 그가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이유도 올림픽 금메달 축하와 함께 우리 젊은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은퇴를 앞두고도 그는 구단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인물이란 것을 보여 주었다. 흔히 단장야구로 불리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한·일 야구는 감독 비중이 아주 큰 야구로 비유된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메이저리그와 비교해선 곤란하지만 우리도 성공하는 야구인 단장시대가 도래할 때쯤이면 프로야구도 산업으로서 본궤도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공을 초월한 공통점이 있다. 부패하느냐 발효하느냐는 개개인의 선택에 따른다는 사실이다. 포스트시즌과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야구계도 발효되는 야구인 이야기들이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허 구 연 야구해설가 오랜 선수생활을 거치면서 감독,코치,해설 생활로 야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즐긴다. 전 국민의 스포츠 생활화를 늘 꿈꾸고 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