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선실리후타개의화신

입력 2008-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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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이 <실전> 1로 탁 붙였다. 상대의 세력권에서는 둘 중 하나이다. 가볍게 두어 언제라도 몸을 뺄 수 있게 만들거나, 상대의 허리춤을 붙들고 함께 진흙탕을 뒹구는 것. 지금 같은 장면에서는 후자이다. 함께 구르다 보면 살 기회가 생긴다. 다만 바둑은 두 사람이 두는 것이므로 한쪽만 좋은 일이 생길 수는 없다. 이쪽이 살아가는 동안 상대는 집을 얻든 두터움을 쌓든 할 것이다. 따라서 상대의 이득을 최소화하는 한도 내에서 굴러도 굴러야 한다. 이런 부문의 세계 최고 전문가는 조치훈 9단이었다. 그는 ‘선실리 후타개’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일단 최대한 집을 벌어놓은 뒤 상대방의 세력권 안에 뛰어들어 분탕질을 친다. 그래서 잡히면 지는 것이요, 집을 깨고 살면 이기는 것이다. 그게 전형적인 조치훈류이다. 언론에서는 ‘불꽃류’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조치훈류는 요즘도 각광받고 있지만 예전만은 못해졌다. 두터움을 활용한 공격기술이 발전한 탓이다. 특히 이창호류의 영향이 컸다. 꼭 상대를 잡지 않더라도, 슬금슬금 공격으로 인한 잔돈푼을 모아 반집을 이기는 것이 이창호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전> 흑1은 이상했다. 지금 관건은 우상 방면이다. <해설1> 흑1·3을 둔 뒤 5로 나와 무조건 싸워야 했다. <실전> 흑1은 초읽기에 몰린 이창호가 고민 끝에 둔 수였다. 심오한 수읽기가 묻은 수라고 보긴 어렵다. 급한 대로 임시변통을 한 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백2를 얻어맞으니 졸지에 흑이 엷어져버리고 말았다. 흑은 3으로 젖혀 1의 체면을 살리려 하지만 백10까지 바둑은 백이 재밌는 형국이 되었다. <실전> 흑11이 민첩했다. 백은 눈 뜨고 당해줄 수밖에 없다. 이 그림이 싫다고 <해설2> 백1로 버티면 흑이 집으로 크게 이득을 보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바둑은 백의 흐름이다. 이창호의 얼굴이 어둡다. 슬슬 승부수를 던질 곳을 찾을 때가 왔다. 글|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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