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물서용났네…구도의자존심,한국넘어아시아로

입력 2008-10-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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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등프로야구인천연고팀하위권…98년에첫우승
상실의 시대는 갔다. 비룡의 승천과 함께 인천야구는 ‘SK왕조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문학구장 중앙지정석 통로에는 18년 전 사진 한 장이 걸려있다. 사진 제목은 ‘1989년 태평양 돌핀스 투수 3인방.’ 사진 속 세 남자는 한때 인천 야구의 심장이었던 도원구장 한 편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박정현, 정명원, 최창호. 당시 김성근 감독은 태평양을 정규시즌 3위(당시 7개 팀)로 이끌며 인천 연고팀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3위를 차지한 것이 하나의 상징이 될 정도로 인천은 야구의 변방이었다. 인천야구는 50-60년대 당대 최고의 홈런타자 박현식과 발군의 유격수 김진영 등 슈퍼스타들을 배출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프로개막 이후에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삼미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소설에서 알 수 있듯 인천 팬들은 가슴속에 비애를 담고 살았다. 장명부가 팀 승리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 83년, 전기 리그 2위에 올랐을 뿐 매년 최하위 단골이었다. 95년,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하면서 인천야구는 잠시 기를 편다. 98년, 인천연고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순간에는 도원구장을 박차고 나온 인천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펼쳤다. 연안부두 노랫가락에 오랜 응어리도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현대는 2000년, 인천을 등지고 수원 행을 택했다. 구단에 버림받은 팬들은 다시 한 번 오욕의 역사를 경험했다. 2000년 창단한 SK는 마침내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상처받은 인천 팬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한 곳은 열악한 인천야구를 상징하던 도원구장이 아니라 홈팀의 실력만큼이나 시설도 수준급인 문학구장이었다. 이제 문학구장은 한국야구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첫 번째 우승이 치유의 의미였다면, 2연패는 절대강자로서의 SK를 상징한다. 한국시리즈 2연패는 해태와 현대, 삼성 3개 구단밖에 달성하지 못한 위업이다. 공·수 양면에서 탄탄한 전력을 자랑하는 SK의 질주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제 인천 팬의 시선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구단을 가리는 아시아시리즈를 향하고 있다. 잠실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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