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우의필드오브드림]번트의두얼굴

입력 2008-11-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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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트는 참으로 묘한 기술이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기록상 공식적으로 자신을 희생해서 팀이 득점을 올린 경우도 아닌데, 아웃된 경우에도 기록되는 경우는 번트가 거의 유일하다 싶을 정도다. 게다가 번트란 자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기가 막힌 작전으로 칭송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스몰볼’에서 번트는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된다. 반대로 번트가 많아지면 지루한 작전 야구의 전형으로 야구를 재미없게 만드는 요소로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만다. 심지어 가끔씩은 주자가 있을 때 내야안타를 노리겠다는 생각으로 번트를 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웃 되고 주자가 살았다면 희생타로 기록될 때도 있다. 때론 번트가 감독과 선수간의 신뢰 문제로까지 대두되기도 한다. 타자는 찬스에 한방 치고 싶은데, 감독이 병살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번트를 지시할 경우에는 작전 불이행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 동면의 양면처럼 극단적인 얼굴을 갖춘 것이 번트인 것 같다. 번트 활용도에 따라 어떤 감독은 승부에만 집착하는 재미없는 감독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감독은 선수를 믿어주는 덕장처럼 보이게도 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바로 번트를 활용하는 타이밍일 것이다. 같은 두 팀간의 경기이고 전날 경기와 같은 점수로 5회가 진행되고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주자가 나갔을 때 어제는 번트 작전이 지시됐고, 오늘은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성패 여부를 떠나 현재 마운드의 투수가 누구인지, 오늘 불펜 상황이 어떤지, 우리와 상대 타선의 오늘 분위기가 좋은지 나쁜지, 투타간의 상대전적이 어떤지, 타석의 타자가 번트에 능한지, 그라운드 상태가 어떤지, 상대 수비진의 번트 대처능력이 좋은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요소들을 감안해야 한다. 두산과 삼성의 플레이오프 5차전을 보자. 2점차로 뒤지던 9회말 무사 1·2루 기회에서 삼성은 전날에 이어 2경기에서 내리 홈런을 기록했던 박진만에게 강공을 지시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요미우리와 주니치의 클라이맥스시리즈 제2스테이지 1차전에서 8회말 3대3 동점인 상황에서 맞이한 무사 1루에서 5번타자 이승엽에게 번트작전이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다. 단 1%라도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는 선택의 조건이 형성됐느냐가 오히려 야구를 바라보는 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급한 마음, 욕심이 앞서는 선택이 아닌 진정 최대한의 가능 요소를 감안한 선택이라면, 번트작전의 성패가 아닌 또 하나의 야구의 오묘함을 보여주는 즐거움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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