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는 무슨…, 토스볼부터 던져!
내야수비. 처음에는 펑고 몇 개를 쳐주는 훈련인 줄 알았다. 손시헌을 따라 유격수 수비위치에 섰다. 1,3루에 주자가 나갔다. 1루주자가 도루를 시도할 때, 다양한 수비포메이션을 연습하는 훈련이다. 박진감과 긴장감 넘치는 내야. 도저히 자신이 없어져 ‘멍’하니 있자 덕아웃에 있던 김경문(50) 감독이 사인을 냈다. ‘저건 무슨 사인일까?’ “교체!”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토스볼 던져주는 것부터. 배트를 쥔 선수의 허리 안쪽을 겨냥해야 하는데, 이것조차 제구가 안 된다. 이종욱(28)이 “이거 치다가는 폼 다 망가지겠다”며 웃자, ‘학다리’ 신경식(47) 원정기록원이 “정성이 없다”고 나무랐다.
이종욱에게 토스볼 한 상자(150개)를 던지고 나니 신인 김영재(22)가 배트를 쥐고 섰다. 10월, 연습경기에서 요미우리 번사이드에게 홈런을 쳤다는 그 선수.
신인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에는 정말 정성스럽게 던지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두 손으로 토스볼을 던졌다가 신경식 원정기록원에게 또 한 번 혼이 났다. “두 손으로 던지라는 말이 아니라, 두 손으로 던진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라고 했지….”
○타격, 손바닥이 해어져 본 사람만이 알지
“언제까지 보조만 할 거야?” 김광림(47) 코치가 드디어 배트를 쥐어주었다. “자, 기마자세.” 김 코치의 토스볼. 30개가 넘어가자 몸에 힘이 빠진다. 그만둔다고 하기에도 쑥스러워 이를 물었다.
하지만 이를 물어도 안 되는 시점이 있다. ‘어쩌지? 그냥 드러누워 도저히 못하겠다고 할까?’ 몸의 중심이 틀려 ‘기우뚱.’ 김 코치는 그래도 공을 던졌고, 공은 몸에 맞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한 박스를 겨우 다 소화한 뒤에야 쓰라린 왼손을 한 번 만져볼 수 있었다. 붉게 물든 배팅장갑. 장갑을 벗었더니 왼손 검지와 중지 밑 손바닥 피부가 벗겨져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김)현수는 작년 스프링캠프 때 어땠냐 하면….” 김 코치가 때마침 지나가던 김현수를 불러 세웠다. 크고 단단한 손바닥에는 작은 혹같이 생긴 굳은살들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코치님, 왜 저는 선수들에게 굳은살 없는 부분도 까져 있죠?”, “아, 거기는 벗겨지는 부위가 아닌데 배트를 잘 못 잡았구먼. (배트) 잡는 법부터 다시.” 몸을 바치고도 욕먹었다. 역시, 모든 일에는 기본이 우선이다.
까진 손으로 또 배트를 잡고, 아물기 전에 또 살이 해어지면 굳은살이 박힌다. 배트와 손의 계속된 마찰은 심지어 지문을 배트에 옮겼고, 배트에 실린 지문은 야구를 보는 ‘혜안(慧眼)’이 됐다.
순간, 순박한 미소 뒤에 숨어져 있는 선수들의 독기가 무서워졌다. 홈런과 다이빙 캐치. 그 화려한 장면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그 플레이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가슴에 뭉클함을 남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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