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간다]야구공만들기’무모한도전

입력 2008-12-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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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두산의 마무리훈련 체험. 프리배팅시간이었다. 선수들이 힘껏 때린 공이 눈앞에서 아스라이 사라졌다. 저 딱딱한 공이 100m 이상을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체 공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사실, 20여전에도 같은 의문이 있었다. 모 구단의 어린이회원 가입선물로 받은 사인볼. 시계를 분해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공의 배를 갈랐다. 그 속에는 ‘탱탱볼’이라도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쉴 새 없이 톱밥만 나왔다. 실망감에 한 번 울고, 사인볼은 시계처럼 재조립이 안 된다는 사실에 또 한번 울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사인볼과 실제공은 내부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20년을 넘어 ‘진짜 야구공’ 속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선수에서, 장인으로. 대전에 위치한 (주)맥스스포츠 공장을 찾았다. ○일손도 모자란데 잘 됐네 마중 나온 김영산 대표이사가 반갑게 인사를 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손이 모자란다”며 곧바로 작업실로 데려갔다. 야구공제조의 전 과정을 기계화시킨다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일본에서 시도한 적은 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작업실은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럽다. 야구공 제조에 쓰이는 양모(羊毛)의 최대 적(敵)은 습기. 물기를 머금은 양모 실로 야구공을 제조할 경우, 기준무게를 초과하는 불량품이 나오기 쉽다. 당연히 반발력도 떨어진다. 김 대표는 “눈이나 비가 오면 작업을 중지하거나 최소화시킨다”고 했다. 와인 병마개로나 쓰이는 줄 알았던 코르크가 야구공의 코어. 작은 ‘탱탱볼’처럼 생긴 붉은색 코르크(22g)에서 야구공의 기본적인 탄성이 나온다. 코르크에 양모로 된 실을 몇 가닥 감는 것이 첫 공정. 코르크를 골고루 감싸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코르크 표면이 미끄러워 실이 잘 흘러내린다. 첫 작업부터 난관이다. 두 번째. 실을 감은 코르크를 기계 위에 올려놓으면 ‘도로롱’를 소리를 내며 모사5합(다섯 가닥)이 코르크에 감긴다. 세 번째는 모사3합(세 가닥)으로 공을 감싼다. 다음에는 면사20수7합(일곱 가닥)의 차례. 굵은 실로 공의 기본 모양을 만든 다음, 가는 실로 촘촘히 빈 공간을 메우는 과정이다. 야구공은 배트에 맞는 순간, 찌그러졌다가 날아가면서 원형을 되찾는다. 단단한 야구공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공 내부에 실이 고르게 감겨있지 않을 경우, 원래 모습을 되찾지 못한다. 김 대표는 “때로는 관중들이 찌그러진 홈런볼을 주워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실 한 올 감는 것도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장인에게는 눈이 저울 “이게 몇g이나 될 것 같아요? 122g 일걸요?” 가공 중인 공을 들고서, 이 곳에서 5년간 일했다는 김미영씨가 물었다. 장인들에게는 눈이 저울. 저울에 공을 올리자 정말 ‘122’라는 숫자가 찍혔다. 한 공정이 끝날 때 마다 무게와 두께를 측정, 오차가 생기면 재가공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손때가 많이 묻을수록 정교한 공이 탄생한다. 그 속에서 귀신같은 감각이 생겼다. 다음은 공에 가죽 옷을 입힐 차례. A급 야구공 제조에는 일본산 소의 등과 엉덩이 가죽이 쓰인다. 이 부분의 가죽이 가장 탄력이 좋기 때문. 뱃가죽은 쭈글쭈글해지기가 쉬워 좋지 않다. 공과 가죽에 본드를 묻혀 접착시킨 후, 바느질 작업에 돌입했다. “군대에서 바느질로 이름 좀 날렸다”는 말이 허세로 탄로 나기까지는 채 5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김 대표가 양손 검지, 중지, 약지에 6개의 골무를 끼워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야구공은 양손으로 바늘을 잡고, 손을 교차시키며 꿰맨다. 보통 한손으로 바느질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부자연스러운 동작. 한 손 당 108번의 바느질을 통해 총 216땀이 새겨진다. 5년 이상 숙련된 장인의 경우 15분 만에 꿰매지만, 초보자는 1시간 이상 걸리는 작업이다. 투수는 이 실밥을 잘 이용해서 공을 던져야 하고, 타자는 실밥을 피해서 쳐야 한다. 타자가 공의 실밥 부분을 때린다면 상대적으로 공이 덜 나간다. 야구공에서는 가죽부분이 스위트 스팟인 셈이다. ○야구공의 체온은 36.5℃ “어차피 불량품일 것 같은데, 이 공 기념으로 가져도 되죠? 수고하셨습니다.”, “가긴 어딜 가요? 제일 중요한 게 남았는데.” 요기 베라의 말처럼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최종품질검사. 공에 가라앉은 부분이 있을 경우, 송곳을 바늘구멍에 넣어 가죽을 당겨 공을 다듬고, 인두로 가죽부분을 다린다. 가죽을 다리면 상대적으로 실밥이 튀어나온다. 커브가 주무기인 투수는 실밥이 많이 튀어나온 공을 선호한다. 반면, 직구 위주의 투수들은 손가락 끝이 잘 까지기 때문에 튀어나온 실밥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군복 다리듯, 다리미에 힘을 실었다. 엠보싱 실밥이 됐다. 이 공은 제발 ‘커브의 달인’ 삼성 윤성환에게 가기를…. 마지막으로 ‘MAX’라는 로고를 찍었다. 마치 이름 석자를 새긴 냥, 뿌듯했다. 자식을 낳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저 녀석은 누구의 글러브에 안기고, 또 누구의 배트에 맞아 어느 구장의 하늘을 날게 될까. 하지만 이런 상상도 그 공이 투수의 마음에 들어야 가능하다. 투수가 심판에게 공 교체를 요구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공을 만든 장인이다. 현역시절 공을 자주 바꾸기로 유명했던 진필중이 마운드에 설 때면, 김 대표는 노심초사했다. LG에서 SK로 이적한 이승호, 삼성 배영수도 자주 공을 바꾸는 ‘예민한’ 투수. 김 대표는 버림받은 공들을 나중에 꼭 따로 모아 어떤 점이 불량인지를 꼼꼼히 확인했다. 때로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도 경기에 쓰이지 못한 공이 있었다. 선수들의 대답은 “그냥, 바로 전(前) 타자에게 안타 맞은 공이라 기분이 나빠서요.” 투수들은 기분전환용으로 공을 바꾸기도 한다. 역시, 제 아무리 능력있는 공이라도 ‘줄을 잘 서야’ 한다. 반면, 한화 정민철, 송진우처럼 공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고마운’ 투수들도 있다. 대개 정민철처럼 손가락이 길거나, 송진우처럼 손가락은 욕탕에도 잘 넣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철저한 선수들이 공에 덜 예민하다. 파울볼을 많이 치는 선수는 더 사랑스럽다. 현역 시절의 이정훈 천안북일고 감독이나 삼성 박한이, SK 정근우, 두산 고영민 등은 관중에게도 공을 선물하고, 공 만드는 회사에도 보탬을 준다. 한화 김태균 같은 홈런타자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파울과 홈런에 열광하다가는 투수들에게 미움을 살 수 있으니, 속으로만 쾌재를 불러야한다. 결국 야구공 한 개가 완성되어 상자에 담겼다. 한 시즌 동안 한 구단에서 쓰는 야구공은 약 2만5000개. 그 모든 공에는 장인의 손길이 녹아있다. 그래서 야구공의 체온은 사람과 같은 36.5℃.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온기를 머금고 있는 공 덕분에 그라운드 안에서는 또 하나의 인생사가 펼쳐지는 지도 모르겠다. 대전|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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