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원의도쿄통신]별난日송년방송가

입력 2008-12-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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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국상처’다룬드라마줄줄이…전쟁반성없이자기연민만가득
일본 지상파 방송의 송년회는 시계 바늘을 1년이 아니라 더 멀리 되감는 방식인 모양이다. 한국처럼 한해를 결산하는 연기대상, 연예대상 같은 시상식이 없는 대신 일본에 패전국이라는 정의를 안겨준 시대를 회고하는 특집 드라마가 방송사별 메뉴로 줄을 이었다. 지난 24일 TBS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종합한 ‘그 전쟁은 도대체 무엇이었나-일본개전과 도조 히데키’를 4시간 30분여에 걸쳐 방송한 데 이어 니혼TV는 26일 ‘도쿄대공습’을 재편집 버전으로 내보냈다. 27일 TV 아사히는 ‘육체의 문’을 관련 특집으로 선보여 바통을 이어 받았다. 연말 특집 드라마답게 캐스팅도 화려했다.‘그 전쟁은∼’의 경우 비트 다케시가 민머리 분장을 한 채 도조 히데키 역을 연기했으며 아베 히로시 등 정상급 연기자들이 주요 배역에 포진했다. 호리키타 마키, 에이타 등이 출연한 ‘도쿄 대공습’이나 미즈키 아리사가 주연을 맡은 ‘육체의 문’도 간판의 중량급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그 전쟁은∼’이 1941년 진주만 공습을 단행하며 태평양전쟁을 개시한 일본의 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되짚어보는 내용을 그렸다면 ‘도쿄 대공습’은 1945년 3월 미국의 도쿄 공습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등을 신파조로 다룬 드라마였다. ‘육체의 문’은 패전 후의 도쿄를 배경으로 몸을 팔아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매춘 여성의 이야기를 취급해 비슷한 시기를 얼마나 다양하게 드라마화 할 수 있는지를 엿보였다. 역사적인 배경을 깐 시대극이야 어느 나라에나 무수하게 반복되는 레퍼토리이지만 연말 시즌에 공통의 시대를 그린 드라마가 빼먹으면 곤란한 숙제처럼 방송사별로 전파를 타는 것은 좀 의아하게도 보인다.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전쟁의 비극성을 노래한다. 전쟁이 얼마만큼 인간에게 몹쓸 짓인지를 강조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와 다를 바 없다. 일본인들이 그 당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했고 종전 후에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토하며 폐허가 된 땅에서 다시 일어섰는가를 강조하는 것은 언뜻 송구영신의 보편적인 정서에 잘 들어맞는 테마일 수도 있다. 특히 극적인 재미 대신 사실적인 접근에 공을 들인 ‘그 전쟁은∼’은 태평양 전쟁 개전을 결정한 회의 장면을 지루할 정도로 리얼하게 재현하면서 당시 정부와 군 책임자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도록 고생한 인간 군상을 그린 다른 픽션 드라마는 물론이고 이 드라마에도 반성은 없었다. 전쟁은 오판이었다며 비판의 칼날을 세우는 듯 하면서도 왜 오판이었냐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오직 자국의 희생이 너무 컸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일본 스스로가 자초하고 주변국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그 전쟁의 전모는 제쳐둔 채 일본이 그 시대를 회고하는 방식에는 오로지 자기 연민의 감정만이 넘쳐났다. 1년이라는 역사를 더 포개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시점에도 일본의 과거 인식에는 자기중심적인 틀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 황소 같은 고집이 있다. 도쿄 | 조재원 스포츠전문지 연예기자로 활동하다 일본 대중문화에 빠져 일본 유학에 나섰다.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어떤 때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을 대중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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