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패의악몽과불펜야구

입력 2008-12-29 11: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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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의 한국 야구 500만 관중 시대를 돌이켜보면 우선 베이징 올림픽의 극적인 9전 전승 금메달이 가져다 준 국민적 효과가 엄청났지만, 올림픽 이전의 관중 붐에 대해선 롯데 야구의 부활과 매 경기 역전승의 드라마 같았던 승부들도 한 몫 했다. 무제한 연장전의 돌입과 함께 유난히도 7회 이후 뒤집고 뒤집히는 경기 속에 팬들은 야구 경기가 늘어진다고 투정할 틈을 찾지 못했고, 어제의 짜릿한 승리를 마음에 품으며, 혹은 오늘은 어제의 안타까운 패배를 꼭 설욕해주길 바라며 다시 야구장을 찾았다. 그러나 짜릿한 역전승의 반대말은 충격의 역전패다. 각 팀의 미들맨들이 ‘믿을맨’의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서 감독들의 가슴은 애간장이 탔고, ‘불ㅇㅇ’, ‘ㅇ작가′하는 식의 불안한 마무리 투수들을 부르는 농담 반 진담 반의 호칭도 늘어만 갔다. 야구가 흐름의 스포츠라는 말을 모든 사람들이 너무 명백한 진실로 이야기하고 받아들이다보니 허무한 역전패를 당하면 감독이나 선수들 스스로가 ‘당분간은 이기기 어렵겠구나.’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몇 경기만 실패해도 응원하는 팀의 마무리 투수를 ‘새가슴’으로, 자신의 마무리를 믿고 내보낸 감독을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팬들의 빗나간 사랑도 한 두 경기가 아닌 시즌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그들의 시야를 근시안적으로 바꾸는 한 원인이었다. 이는 단순히 극적으로 이기고 지는 그날 하나의 경기에서 벗어나 마무리 투수들의 부담감을 엄청나게 키워버렸고, 그러다보니 마무리 투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또 역전패를 당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보듯이 의료사고를 두려워하고, 수술 성공률 높이기에만 초점을 맞춘 의사들이 방어적 진료가 결국 환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처럼 이런 역전패를 두려워하는 감독들의 방어적인 마운드 운영은 야구단 전체에 피해, 아니 피해라곤 말할 수 없지만 변화를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이 변화가 긍정적인 변화인지, 부정적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자.) 서울고 시절 혹사 논란까지 불렀던 선발투수 임태훈은 두산의 2007년 1차 지명으로 신인왕까지 거머쥐었지만, 정작 프로에서는 불펜으로만 뛰고 있다. 반대로 2005년 리그 세이브왕이자 4년 동안 클로저로 뛰며 111번의 세이브를 성공시켰던 같은 팀의 정재훈은 내년 시즌 선발 전향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고등학교 때 선발을 했으니 프로에서도 선발을 해야 한다거나, 마무리가 선발로 전향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팀 사정상, 또 감독의 전술에 따라 결정된 사항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임태훈은 지금 현재나, 앞으로의 선수 생활을 바라볼 때 분명 선발로 적합한 선수이나 불펜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도리어 선발 투수가 될 기회를 잃었고, 이해 반해 정재훈은 마무리에서 결격사유를 보인 게 오히려 선발로 가게 된 기회가 됐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여기에서 기존의 야구 관점과는 다소 모순이 생긴다. 투수라는 직업군을 가진 선수들이 모두 앵무새처럼 하던 “일단 1군에 올라가고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선발투수로 자리 잡고 싶습니다.”라는 말은 완전히 퇴색된다. 2군에서 올라온, 혹은 신인으로 첫 선을 보인 선수가 일단 선발보다는 불펜으로 기용돼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것까진 기존과 같지만, 정작 불펜에서 너무 잘해버리면 선발로 올라갈 수가 없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상목, 조진호가 선발로 뛰고, 윤성환, 정현욱이 중간계투로 나오는 삼성에서는 그로 인해 팬들이 뒷목 잡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삼성의 선동열 감독은 ‘선발은 그저 맨 앞에 나오는 투수’로 보는 관점이 가장 심한 감독이다. SK의 윤길현, 한화의 안영명 등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사례이다. 2008시즌을 돌이켜볼 때 위와 같은 사례로 1년 만에 선발 자리를 차지한 신데렐라는 한화의 김혁민 외에 딱히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화의 토마스나 히어로즈의 황두성처럼 정말 어쩔 수 없이 불펜으로 돌아간 투수들도 있다.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가 너무나도 칭찬받을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역전승을 즐기기보다 역전패를 피하려고 하는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선발 경시, 불펜 중시의 마운드 운영 풍토는 더욱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5회, 혹은 7회 이후 승률을 따지며 불펜야구의 가치를 신봉하고 있는 매스컴들의 데이터 보도도 이런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다. 경기 중반 이후 점수를 많이 낸 팀에 대한 자료를 말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역전패만은 피하자’는 감독들의 소극적인 태도는 경기의 전체적인 구도 자체를 바꿔버리는 동기가 됐다. 선발은 일찌감치 갈리고, 잘 던지는 불펜 투수들은 선발보다 훨씬 감독들의 신임을 받으며 그 덕분(?)에 시도 때도 없는 등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야구가 없는 비시즌에 농구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역전에 역전, 막판 뒤집기 버저비터가 흔하디흔한 농구에서는 역전패를 당하고도 다음 경기에서 너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등장하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오히려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선수들은 오늘의 패배를 아쉽다는 것 정도로 풀어버리고, 팬들도 졌지만 재밌는 경기를 봤다는 표정으로 즐기는 모습은 어쩌면 야구가 배워도 좋을 장면이 아닐까? -엠엘비파크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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