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희망의아이콘]“1500m亞신기록탈환”박태환‘로마프로젝트’가동

입력 2008-12-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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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09년에도 박태환의 희망스토리인가? 온달이 계속 바보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또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장수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면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감동이 없었을 것이다. 온달이 평강공주의 도움으로 역경을 딛고 ‘바보’라는 고정성을 탈피하는 순간, ‘이야기’가 탄생한다. 박태환(19·단국대)의 희망스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천재다. 박태환은 경영대표팀 노민상 감독이 자유형400m에서 “3분48초대로 들어오라”고 하면 그대로 들어올 수 있는 선수다. 생체시계가 있는 셈이다. 2008년 6월 괌 전지훈련. 체육과학연구원 송홍선 박사가 “오른쪽과 왼쪽의 영법균형이 어긋난다”고 지적하자 박태환은 “1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1주일 후 첨단기계를 이용한 측정에서 박태환은 거짓말처럼 영법균형을 찾았다. 송 박사는 그래서 “물 속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수준의 감각을 가졌다”고 마린보이를 평가한다. 하지만 이 모든 천재성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진흙 속에 묻혀 버릴 수도 있었다. 단지 천재성뿐이었다면, 박태환은 2009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열등감만 심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고정관념을 헤치고 나간 박태환 우선, 수영천재가 ‘한국’이라는 척박한 수영토양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불운이었다. 하지만 박태환은 “아시아 수영선수로서의 자존심이 있다”고 했다. 수영이 한 때 귀족스포츠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태환의 집은 수영수강료를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천식을 앓아서 수영을 시작했으니 사실, 타고난 강골도 아니다. 하지만 박태환이 7세 때부터 그를 지도해 온 노민상 감독은 “(박)태환이는 항상 밝았다”고 했다. 박태환이 성공가도를 달려온 것만도 아니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 박태환은 부정출발로 실격당하고 라커룸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곳에서 박태환은 “4년 뒤에는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다짐했다. 베이징올림픽 훈련 기간부터 박태환은 아테네의 경험을 자주 이야기했다. 실패의 아픔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동력으로 삼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동선수에게 흔히 있는 트라우마 따위도 그래서 없었다. 스타트라인에 선 순간, 실패를 그냥 묻어 둔 사람이라면 4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오금이 저릴 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태환의 베이징올림픽 자유형400m 결승당시 스타트 반응시간(0.69초)은 결선에 진출한 여덟 명의 인어들 가운데 단연 1위였다. 진정한 용기를 몸에 익힌 것이다. 2006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한 이후에는 친아버지와 같은 노민상 감독과 결별하는 아픔도 겪었다. 2007세계선수권 이후에는 박석기 코치와도 헤어졌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지도자가 운동외적인 이유로 교체되었지만 박태환은 흔들리지 않고, 다시 옛스승의 품에 안겼다. ‘불모지, 가난, 실격, 트라우마, 결별.’ 과연 이 관념의 조합 속에서 어떻게 올림픽 금메달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박태환에게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았다. ‘의지와 오기, 용기, 반성과 재결합.’ 악화를 대립물로 치환해 간 그는 그래서 정치혼란과 경제 불안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2009년 7월, 로마를 향해 헤엄치는 마린보이 2009년, 박태환은 또 하나의 큰 도전에 나선다. 7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장린에게 빼앗긴 1500m아시아신기록을 탈환하겠다는 목표다. 200·400·1500m는 훈련의 양상이 다르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마이클 펠프스(미국)는 세 종목 중 단거리로 분류되는 200m에만 출전했고, 그랜트 해켓(호주)은 200m는 빠졌다. 하지만 박태환은 “1500m에 훈련의 무게를 두면서도 단거리와 장거리에서 모두 만족할만한 기록을 내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금메달을 획득한 자유형 400m ‘수성(守成)’이 아니라 새로운 ‘정벌(征伐)’의 꿈을 가지고 있어 놀랍다. 어린시절 스타 반열에 올랐다가 사라져간 선수들과 박태환이 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지만 박태환은 이미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달성했다. 물이 아닌 고정관념을 헤치며 지금의 자리까지 다다른 박태환이기에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다. 난장판 국회와 답답한 경제상황. 암울하게 시작된 2009년이지만 마린보이는 올해도 온 국민에게 희망의 물결을 선사할 것이다. 박태환은 3일, 큰 꿈을 안고 미국 남가주대(USC)로 6주간의 전지훈련을 떠난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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