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지도자연수…월드컵4강주역김태영“‘마스크맨’인기美서도통해요”

입력 2009-01-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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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눈부셨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투지를 앞세워 세계 4강의 위업을 달성했다. ‘마스크맨’으로 불렸던 김태영은 코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8강 스페인 전에서 눈부신 수비력을 뽐내며 전 세계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라운드의 투사’로 불렸던 그가 이제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공부에 푹 빠져 살고 있다. 1년 6개월 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그는 영어 공부와 함께 대한축구협회에서 진행하는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월 초 지도자 교육을 마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를 만났다. 선수 때의 전투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다. ○미국에서도 월드컵 스타 김태영은 영국과 미국을 두고 고민하던 중 가족들이 모두 함께 지낼 수 있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김태영에게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도 없어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하나둘 늘었다. 그는 큰 아들 유현(12)이가 다니는 축구클럽을 가끔 방문한다. 이 모습을 본 한 미국인 학부모가 김태영이 2002년 한일월드컵 태극전사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미국인은 어느 날 김태영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런 뒤 인터넷을 통해 김태영이 2002월드컵과 1998월드컵에서 뛰었던 사진을 찾아내 지인들에게 보여줬다. 덕분에 미국인들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친구들도 사귀게 됐다. “월드컵이 얼마나 큰 지구촌 이벤트인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됐어요. 세월이 적지 않게 흘렀지만 아직도 그 때 그 모습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그 덕분에 지금은 동네 아빠들 사이에서는 스타대접을 받는다니까요.” 김태영도 간혹 2002월드컵 DVD를 아이들과 함께 본다고 했다. 경기 장면을 보면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과정이 떠올라 가끔은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있다고 했다. “최종엔트리를 확정하기 전에는 정말 경쟁이 심했어요.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하고 매일 훈련을 했어요. 혹시나 아프다고 하면 엔트리에서 제외될까 노심초사했죠. 아픈데 훈련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정말 죽을 맛이었어요. 그 때는 진짜 고생 많았다니까요.” 뒤를 돌아보면 모든 게 추억거리. 그에게 월드컵 비화를 하나만 들려달라고 했다. “뭐 워낙 많은 인터뷰를 해서 다 털어놓은 것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슬슬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면서 과자, 초콜릿 등 군것질 금지령이 내렸어요. 히딩크 감독이 철저하게 검사를 하고 다녔죠. 그런데 다 방법이 있었어요.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팬들이 선수들 숙소 앞에 매일 찾아왔거든요. 선수들 가운데 인기가 많은 이들이 살짝 호텔 밖으로 나가서 팬들에게 선물을 받아오면 거기에 과자, 초콜릿 등이 들어있었어요. 누가 그걸 받아가지고 오는 날은 다 같이 방에 모여서 회식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히딩크 영감님이 알았으면 난리 났겠죠.” ○2010년 월드컵 김남일에게 기회가 있었으면 “2002년 월드컵 이야기를 하니까 (김)남일이가 보고 싶네요. 그 놈이 무뚝뚝하지만 참 좋은 녀석이거든요.” 그는 전남과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후배 김남일을 유독 챙겼다. 그런 뒤 안타까운 심정도 드러냈다. “남일이가 요즘 대표팀에서 제외됐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본선에서는 남일이 같은 경험이 많은 선수가 꼭 필요하다고 봐요. 꼭 다시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2002월드컵을 예로 들었다.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은 신구조화가 잘 이루어졌어요. (홍)명보형, (황)선홍이형에 저, (최)진철이 등 노장들과 이천수, 박지성 등 신예멤버들이 팀워크를 잘 맞췄습니다. 특히 명보형과 선홍이형처럼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팀을 잘 이끌어줘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거든요.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남일이처럼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필요합니다.” ○가족과 공부에 빠진 ‘마스크맨’ 김태영은 뒤늦게 가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미국에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선수 시절에는 몰랐던 가족의 사랑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제가 선수 때는 애들이 아빠가 집에서 나가면 ‘다녀오세요’가 끝이었어요. ‘보고 싶다’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그저 돈 버는 사람 정도였다고 할까요. 하지만 요즘은 달라요. 지금 미국으로 전화하면 애들이 ‘보고 싶다’, ‘빨리 오라’고 난리에요.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그는 미국에서 영어 공부하는 시간을 빼고는 항상 아들 유현(12), 딸 다현(10)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친구들 부모와도 가깝게 지내게 됐고, 영어를 더 잘하는 아이들 덕분에 자신도 영어 표현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아이들과 친구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니 너무 좋다고 했다. 국내에서 지도자 강습회가 열리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꼭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와 수업을 듣고 돌아간다.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해서 수업을 듣고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운동하면서 몸으로 배웠던 것 이외에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어요. 감독이 선수들을 기술적으로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관리하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등 모든 부분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도 교육을 통해 알게 됐어요. 그러고 보면 히딩크 감독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어요.” 그에게 언제쯤 지도자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아직 제가 모자란 부분이 많거든요.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준비를 잘 안 하고 뛰어들면 금방 실패할 것 같아서 더 많이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기회가 있겠죠.” 2002년 월드컵 전사들 중 황선홍이 부산 아이파크 감독, 최진철은 강원FC코치, 홍명보는 전 대표팀 코치, 최용수는 FC서울 코치 등을 맡고 있다. 그들과의 경쟁에 대해 묻자 김태영은 “영원한 경쟁자이자 동반자”라는 말을 했다.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김태영. 2002년 여름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궜던 그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돌아오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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