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트랩´,왜이래아마추어같이

입력 2009-01-25 11:09: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테야!” 박경리의 소설 ‘토지’ 속 이 대목을 영화 ‘트랩’(The Flock)이 구체화한다. 성 범죄자들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가 황야를 질주한다. 현기증 일으키는 어지러운 잔상들이 러닝타임 내내 이어진다. 황야를 가로지르는 자동차 신은 잊을만 하면 나타난다. 100번 이상은 될 법한 디졸브 편집은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날 지경이다. 컷이 튀는 장면을 감추기 위해, 혹은 감성적인 뮤직비디오에서 주로 사용되는 디졸브 효과를 스릴러 장르에서 이토록 많이 본 기억이 있던가. 할리우드에서 건너온 영화라지만, 한국영화만큼이나 익숙한 느낌이다. 할리우드만의 스케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소 저렴한 제작비로 촬영했겠다는 판단이 바로 선다. 상업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도 독립영화 같은 느낌을 내는 혼란스러운 영화다. 이 영화가 무간도를 연출한 류웨이강(劉偉强)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란 사실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주연 배우는 리처드 기어, 팝스타 에이브릴 라빈이 카메오 급이다. 상업영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함이 있다. 난잡한 영상미에 노골적인 영화 메시지가 이상스럽다. 상업영화만의 스릴도 부족하다. 사라진 여자를 찾기 위해 추격전을 벌인다는 이 영화의 광고를 보고 영화 ‘추격자’를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 말로 때우는 이유는 돈이 없어설까, 기술이 없어설까.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스릴 넘치고 잔인하지만, 정작 눈으로 확인하면 전혀 무섭지가 않다. 스릴러라기보다 심리전에 가깝다. 성범죄와 연루된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연방보안국 요원 에롤(리처드 기어)과 후임자 앨리슨(클레어 데인스)의 모습은 감정 대 이성의 싸움으로 압축된다. 범죄자를 쫓는 추격자의 구도가 아닌, 범죄자를 쫓는 두 사람의 대립 구도가 비중 높게 그려진다. 한국영화 ‘투캅스’로도 보여진다. 여성을 납치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고도의 추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느낌으로 범인을 뒤쫓는다. 성범죄자 목록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행적을 쫓는 것이 전부다. 성범죄자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주인공의 분노는 선전용 문구만큼이나 직설적이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사건에 매진하는 에롤, 처음에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차츰 에롤의 감정적인 수사 방식에 믿음을 갖게 되는 앨리슨…. 이 두 명의 구도가 영화의 큰 축이다. 사지를 자르고 혀, 눈 등을 차례로 절단하거나 뽑았다는 극악무도한 살해범의 소행은 영상이 아닌, 말로 대체된다. 이 영화는 현지에서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고 곧바로 DVD로 직행했다. 리처드 기어, 클레어 데인스, 에이브릴 라빈 등이 출연했지만 평가는 냉정했다. 29일 개봉한다. 【서울=뉴시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