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피플]소프트뱅크서코치수업‘장샘’장원진

입력 2009-02-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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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팬들에겐 ‘장샘’과 ‘안샘’으로 불리는 두 스타가 있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한 ‘샘’은 현역 유니폼을 벗었고, 또 다른 ‘샘’은 SK로 이적했다. 1992년 입단 동기인 두 사람은 OB시절부터 두산의 영욕을 함께 하다 이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장샘’은 장원진(40)이요, ‘안샘’은 안경현(39)이다. 장원진은 사실상 2007시즌부터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다. ‘등록상 선수’였지만 후배들 뒷바라지에 더 큰 시간을 할애했고, 작년 시즌은 1군 경기 출장이 전혀 없었다. 홈인 잠실구장에선 선수라커가 아닌 코치라커를 썼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서류상 선수’에서 최종 은퇴한 장원진은 이제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에 나섰다. 2월 1일부터 미야자키에서 펼쳐지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2군에서 ‘코치 수업’에 들어갔다. 4월 말까지다. 그 후에는 두산에 복귀, 원정기록원이나 스카우트 업무 등 프런트 수업을 통해 또 다른 길에 들어선다. 17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접고,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장샘’을 만났다. ○시원섭섭,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인천 신흥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입었던 선수 유니폼. 정확히 30년을 입었다.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시원섭섭하다’는 자신의 표현대로, 많은 생각으로 복잡하다. 끝까지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 그래도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후회는 없다. ‘코치 같은 선수’로 있다 이제 새로운 길에 들어선 그의 솔직한 마음이다. ○커트의 귀재 2002년 시즌 중반으로 기억한다. 2사 1·2루에서 한화 용병투수 레닌 피코타와 만나 풀카운트 접전 후 줄곧 커트만하다 16구까지 승부가 이어졌다. 1루 주자는 후배인 김동주. 풀카운트라서 매번 스타트를 끊었던 김동주는 마침내 장원진의 적시 2루타 때 홈 플레이트까지 밟았지만 나중에 숨을 헐떡이며 한마디 하더란다. “차라리 삼진을 당하지. 다리가 풀려 죽는 줄 알았어요.” 그는 이처럼 ‘맞히는 재주’가 있는 선수였다. 한때 투수들이 상대하기 제일 싫은, 차라리 볼넷을 내주고 싶은 타자가 바로 장원진이었다. ○데뷔 첫해, 2군의 추억 인하대를 졸업한 뒤 의욕적으로 뛰어든 프로무대, 그러나 첫해 대부분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나도 야구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찾아온 좌절. 그는 그 시간을 또 다른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고교 시절까지 우타자로 뛰던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잠시 스위치 히터 연습을 했는데, 그 도전을 다시 시작한 게 바로 루키 때였다. ‘쟁쟁한 선배들이 있는데 나는 별로 내세울게 없다’는 절박함은 이를 악물게 했고, 그는 훗날 한국 프로야구에서 몇 안되는 ‘능력 있는 스위치히터’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잊을 수 없는 2001년의 기쁨 장원진의 전성기는 2000년이었다. 그해 170안타를 때려내며 최다안타왕을 차지했다. 프로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인 개인타이틀. 그보다 더 기뻤던 건 바로 이듬해였다. 2000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3승4패,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던 두산은 2001년, 삼성을 4승2패로 따돌리고 마침내 한국시리즈 챔피언의 기쁨을 맛봤다. 한국시리즈 2차전 8회 3점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던 장원진은 “아무래도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일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며 잠시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새로운 도전, 떨리고 설렌다 두산 ‘정식 코치’들 중에는 OB 동기생인 권명철도 있고, 후배(김민호 박동일 강인권)도 여러명 있다. 자신의 말대로 ‘가늘고 길게’ 현역 생활을 한 덕분(?)에 다른 구단에도 그보다 ‘어린’ 코치들이 여럿 있다. 최근 2년 동안, ‘코치 같은 선수’를 하면서 느낀 점. 코치가 선수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선수가 잘 하면 선수 덕, 못 하면 코치 탓’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됐다. “정말 힘든 직업이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다. 보람이 있을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1월 30일 미야자키행 비행기에 몸을 싣던 그날, 소프트뱅크 선수단과 첫 공식 상견례를 가졌다. “인사말을 하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현 소속은 소프트뱅크지만 그는 “아직도 가끔씩 내가 소프트뱅크 소속인지, 두산 소속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했다. 소프트뱅크 2군 선수단이 한동안 두산과 같은 라쿠제 히도츠바 호텔을 썼기 때문에 특히 그랬다. 미야자키에서 1차 전지훈련을 끝낸 두산은 11일 쓰쿠미로 이동했고, 장원진은 두산 선수단과 다시 헤어졌다. “숙소에서 오고가다 선수단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했는데…. 이젠 정말 혼자가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환경 지난 시즌 뒤 짬짬이 일어를 공부하긴 했지만 아직 말이 짧을 수밖에. “그래도 하루하루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소프트뱅크에서 코치 수업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한 가지. 일본 구단은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최고의 ‘서비스’를 해준다는 사실. 지원스태프 수 만해도 한국 구단의 서너배가 된다고 설명하던 장원진은 “어떻게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 야구가 대단하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는 일본 선수들도 올림픽에서 우리 한국 선수들에게 지지 않았느냐?”며 웃었다. 소프트뱅크 코치 연수가 끝나면 그는 우선 프런트로 두산에 복귀한다. “그동안 그라운드, 한쪽만 보고 살아왔는데 다른 것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할 뿐”이라는 게 장원진의 말이다. ○나는 영원한 두산맨 언제부터인가 한 팀에서 오래 뛰다 은퇴하는 모습이 멋지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SK로 이적한 동기생 안경현의 선택에 대해서 존중하면서도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다. 난 내 색깔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누구처럼 그는 ‘왕대박’을 터뜨린 적이 없다. 돈을 좀 모았느냐는 말에 대한 그의 대답. “난 굵게는 못 살았지만…. 인천에 내 이름의 집 한 채도 있고 구단이 20년 가까이 먹고 살게 해줬다. 구단이 나를 버린다면 모를까 내가 어떻게 두산을 떠날 수 있겠느냐.” 미야자키(일본) | 김도헌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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