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한국바둑리그가위험하다

입력 2009-03-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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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세계 최대 규모의 바둑대회는 한국바둑리그다. 국내, 국제기전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통틀어 봐도 한국바둑리그만한 매머드 기전은 찾아볼 수 없다. 총규모 35억원. KB국민은행이 메인 후원을 맡고 있고, 여기에 8개 팀의 구단(정확히 말하면 기단)이 참여하는 방식이다. 8개 팀은 각 사별로 3억 5000만원의 돈을 내고 들어와 약 10개월에 걸쳐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 최종 챔피언결정전을 치러 우승팀을 가린다. 바둑계에 있어 한국바둑리그는 중추가 된다.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최강의 기사들은 모두 한국바둑리그의 선수들이라고 보면 된다. 국내 기전은 한국바둑리그에 중심을 두고, 나머지 기전들이 쳇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며 1년을 보낸다. 그런데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암울하기만 하다. 올해 한국바둑리그가 뚜껑을 열기 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단다. 한국바둑리그의 ‘오장육부’는 8개 팀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거나 장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형편이란 얘기이다. 지난 해 참가했던 8개 팀 중 올해도 변함없이 참가의사를 밝힌 팀은 고작 3개 팀에 불과하다. 한게임과 티브로드, 킥스로 모두 2008년 시즌에서 포스트시즌에 진출조차 하지 못했던 팀들이다. 문제는 상위권에 올랐던 팀들의 대거 탈락. 2위 신성건설과 3위 제일화재, 4위 월드메르디앙이 줄줄이 포기의사를 전해왔다. 신성건설, 월드메르디앙과 함께 건설3팀으로 꼽혔던 울산 디아채도 ‘아웃’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타격받은 기업들이 건설사였다. 여기에 2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던 영남일보조차 참여가 불투명한 상황. 이렇게 되면 포스트시즌이 이들의 고별전이 되었던 셈이다. 한국바둑리그의 봄은 오건만 대회장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3개 팀만으로는 한국바둑리그를 꾸릴 수 없다. 다행히 한 지자체에서 참여의 뜻을 밝혀 와 막판 조율 중이란 얘기가 들린다. 그래도 4팀 밖에는 되지 않는다. 한국바둑리그가 돌아가려면 최소한 6개 팀은 되어야 한다. 그래봐야 퇴보지만, 위기의 파고는 넘고 봐야 한다. 한국기원과 바둑TV는 고육책으로 리그 참가비용을 3억 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인하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경기를 탓하며 바둑계의 구애를 외면하고 있다. 기업 유치에 대해 한국기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란 시선도 있다. 리그의 규모만 키워놨지 정작 팀 유치는 바둑TV에 던져놓고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한국기원 허동수 이사장이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GS칼텍스가 킥스팀으로 참가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바둑리그가 창설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만큼 한국기원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달려들어야 한다. 직원들만 내몰게 아니라 사무총장부터 발 벗고 나서서 후원사를 만나고, 설득하고, 유치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매년 ‘한바폐인(한국바둑리그 폐인)’을 양산할 정도로 국내 바둑팬들의 사랑과 기대 속에 성장해 온 한국바둑리그의 위기는 곧 한국바둑의 위기이기도 하다. 2009년 시즌이 시작될 5월은 봄바람 지나가듯 금세 다가온다. 지금 바둑계가 무거워 해야 할 것은 얼굴이 아닌 어깨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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