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베레조프스키‘제2번협주곡의밤’

입력 2009-05-0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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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위에몰아친‘러시아의괴물’
뭐라고 해야 할까.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사진)의 ‘제2번 협주곡의 밤(마스트미디어 주최)’을 보면서 내내 고민해야 했다. 한 마디로 그는 ‘건반 위의 괴물’이었다. 첫 곡은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2번. 연주가 시작된 지 10여 분이 지나도록 무릎 위에 놓인 취재수첩에 단 한 줄도 적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숨이 막힐 뿐이었다. 잠시 후 가는 쇠줄 하나가 피아노 위로 퉁겨져 올라왔다. 그의 강력한 손가락 힘에 세계 최고의 피아노 ‘스타인웨이’가 견뎌내지 못하고 줄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연주는 계속됐다. 친우이기도 한 지휘자 드미트리 야블론스키가 우려의 눈짓을 보내자 베레조프스키는 괜찮다는 손짓을 해보인 뒤 그대로 쳐나갔다. 도대체 이 ‘괴물’은 몇 가지나 되는 음색을 갖고 있는 걸까. ‘러시아의 핵폭풍’이란 별명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성의 휘몰아침 대신 설원을 질주하는 마차 같은 속도감을 들려줬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그렇다 쳐도, 쇼팽과 브람스에서 들려준 ‘미성’은 감미롭다 못해 가슴 한켠이 녹아내릴 듯 부드러웠다. 베레조프스키의 피아니시모는 공연장 어디선가 두 눈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을 수많은 피아니스트 지망생들에게 거대한 ‘벽’으로 다가왔으리라.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에서 다소 밋밋하게 들렸던 유라시안 오케스트라도 끝 곡 브람스에서는 확실한 제 소리를 들려주었다. 웃을 땐 웃고, 슬퍼할 땐 확실한 눈물을 흘렸다. 관객의 박수와 환호성 속에서 베레조프스키가 활짝 웃었다. 하지만 앙코르는 없었다. 세 곡의 협주곡은 괴물마저 지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앙코르가 없었어도, 조금도 섭섭하지 않은 호연이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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