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배의열린스포츠]공포의외인구단과김성근감독

입력 2009-05-12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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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 


드라마 ‘공포의 외인구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주인공인 윤태영 씨가 맡은 ‘오혜성’역할이 나이 차이로 인해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1983년 첫 출간된 이현세 원작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플롯이 꼭 마음에 든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겐 야구만화 가운데는 최고봉으로 기억되었으리라. 아니 만화 가운데 최고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으리라. 1986년 영화로도 개봉되었으니, ‘공포의 외인구단’은 분명 만화 그 이상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과는 사실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추억도 있다. 1980년대 중반 필자가 있던 대학 야구동아리에 마침내 동아리방이 생겼는데, 뭔가 기념할 일이 필요했다. 절친했던 친구가 동아리방 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붓글씨로 정성들여 액자를 만들어 왔다. 액자 속에는 ‘끝없이 강할 뿐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바로 공포의 외인구단 손병호 감독이 했던 말이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동아리방 정면에 그대로 걸려있다. 물론 후배들은 그 문구가 어떻게 유래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일성씨의 “야구 몰라요”를 제외하면 야구관련 최고어록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당시 신생팀이라 동네북처럼 깨지면서도 그 문구는 큰 힘이 되었고, 약체 팀인 우리의 현실을 반어적으로 대변해 주었다. 몇 해 후 모교의 야구부와 실력차는 있었지만 한 두 번은 대등한 경기를 할 때도 있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뿌듯해 한 기억이 있다.

게다가, 훗날 듣게 된 소식이긴 하지만 ‘공포의 외인구단’의 모태가 된 팀이 바로 필자가 있던 모교 야구부란 이야기에 전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전후사정을 잘 아는 모 인사는 “정말 초대감독 배성서 씨는 ‘해병대 훈련방식’을 선호하는 용장스타일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에 나오는 훈련방식의 50%는 당시 1970년대와 80년대 초 모교야구부의 훈련방식이었다”고 회고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런 저런 이유로 아직도 이렇게 한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랜 세월 야구를 좀 더 곁에서 지켜보니 공포의 외인구단 손병호 감독과 가장 닮은 사람은 김성근 감독이 아닌가 싶다. 삼성 2군 감독시절 훈련 끝나고 뵌 기억이 있는데, 그날 김 감독의 모습에서 ‘비주류의 고단함’과 ‘끝없는 열정’이 동시에 묻어났다.

OB,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의 감독, 해태, 삼성에서의 2군 감독, 대학 및 사회인 야구 인스트럭터에 이르기까지 그의 야구인생은 ‘모택동의 대장정’을 연상시킨다.

‘끝없이 강하고 싶을 뿐이다’는 손병호 감독의 외침은 역설적으로 영원한 비주류의 절규처럼 들리면서 김성근 감독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끝으로 누군가 “야구가 아름다운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야구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직도 야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이다. 외인구단의 손병호나 김성근 감독이나, 야구나 마지막 화두는 결국 ‘인간’으로 귀결되리라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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