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젊은작가 10人단편모음집…커피잔을들고재채기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읽을 책을 고르다 우연히(그러나 운명적으로!) 손에 쥔 책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은 사실 독서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아주 가끔이지만) 진짜 ‘제대로 재밌는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이면 숨마저 아껴가며 책을 읽다가 순식간에 집 앞에 도착하는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한국 젊은 작가 10인의 단편을 모은 환상문학단편선이다. ‘학교(정애진)’, ‘노래하는 숲(은림)’, ‘샹파이의 광부들(이영도)’ 등 10명의 작가가 10편의 단편을 실었다. 책 제목인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김이환의 작품에서 땄다.

첫 편인 ‘학교’에서부터 터졌다. ‘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지?’로 제1회 이매진 단편공모전에서 판타지부문을 수상한 정애진의 단편이다. 학생들을 제물로 바쳐 유지되는 학교. 학교 밖 숲에는 자퇴생들과 어른이 되지 못한 괴물 아기들이 우글거린다. 누군가의 희생을 딛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그곳에서 제물이 될 학생은 투표로 결정된다.

‘졸업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소망인 ‘나’는 학교로부터 도망쳐 숲에서 같은 운명의 사람들과 공동 생활을 하게 되지만 결국 공동체에서도 버림을 받고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아기에게 목덜미를 물어 뜯겨 죽어가게 된다. 그리고 말한다. ‘사랑받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

‘드래곤라자’로 이 땅에 판타지 붐을 가져 온 이영도의 단편도 당연히 반갑다. 그가 쓴 ‘샹파이의 광부들’은 세상에서 가장 긴 터널을 원하는 난쟁이들과 파산 위기에 놓인 상인조합의 한판 승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최대 미덕은 무엇보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아 몰랐던, 그러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탁월한 상상력과 필력을 보여 준 작가들과의 달콤한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절대적인 미덕이 있다. 세상에 읽고나서 ‘재미있었다’라는 책은 많다. 하지만 읽은 뒤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라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결코 많을 수 없다.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그런 책이다. 어느 날 문득 커피잔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세상이란,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