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편지] 백일장서 만난 할머니 못다한 꿈이야기 뭉클

입력 2009-1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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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년부터 동네 도서관에서 수필쓰기 강좌를 듣고 있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는 ‘혹시 이 강좌는 국문학 전공이거나 학창시절에 글 깨나 썼다는 사람들이 오는 건 아닐까?’싶어 머뭇거렸지만, 강의실 문을 여니 제 예상과는 정반대더라고요. 그저 평범하게 생긴 동네 아줌마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안심이 됐죠.

그렇게 수업을 한 강좌씩 듣는데 들을수록 욕심도 생기고, 그동안은 몰랐는데, 봄과 가을이면 백일장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주부 백일장, 여성 백일장 등 이름도 다정다감한 것이 여러 취지로 열리는 백일장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그 얘기를 듣자마자 상은 둘째 치고 지금껏 쌓은 제 실력을 한 번 점검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슬며시 인터넷으로 백일장 신청서를 접수했죠.

당일. 저는 제 눈에 보이는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처럼 젊은 사람들뿐 아니라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더라고요. 시제가 공개되고 각자 자리 잡은 공간에 앉아서 미간을 찌푸리며 글을 한 글자씩 써내려 가시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요, 한 할머니께서 동그랑땡을 제 밥 위에 얹어주시면서 “혼자 왔나보네? 글 쓰느라 고생했어. 글은 잘 마무리했고? 나는 생각처럼 써지질 않아서 고생 좀 했다우”라면서 제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할머니는 어릴 적 학교를 다니고 싶었는데요, 그 시절이 그렇듯이 여자가 무슨 학교냐면서 구박만 받다가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고, 여차저차 하다보니 시집을 가고. 자식들 낳다보니까 공부할 시기를 놓치게 된 것이 이날 이 때까지 한으로 남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문화센터 글쓰기 강좌의 문을 두드리게 됐고, 본인이 그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선 “늦게 한다고 나쁜 건 아냐.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을 땐 얼른 해봐. 아기 엄마는 아직 안 늦었으니까 열심히 해”라면서 제 등을 토닥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 수상결과가 나왔어요. 아직까진 솜씨가 많이 부족한지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 대신 더 좋은 할머니의 말씀을 얻고 와서 그런가 하나도 서운하지 않더라고요.

지금껏 뭘 하려고 하면 나이 들었다고 겁부터 먹었는데, 이젠 과감하게 도전해 보렵니다.

당당한 엄마. 그리고 훗날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그 날까지 저의 인생을 즐기고 싶습니다!

From. 박정은|경기도 의정부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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