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김의 MLB 수다] MLB의 철저한 선후배 관계

입력 2009-11-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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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특급의 환한 미소. 생애 첫 월드시리즈 무대에 서며 재기에 성공한 박찬호가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피트니스클럽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 도중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한국시리즈 직후 SK팬 한 사람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골수팬인 듯한 그 분과의 대화 주제는 2차전에서 일어났던 KIA 서재응과 SK 정근우의 기싸움이었다. 무조건적인 테두리 안에 깔려있는 권위의식에 물든 야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그 분의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MLB에서의 선후배 관계는 어떻게 정리되고 있을까. 아버지와 맞담배를 피우는 것이 가능한 미국사회에서 과연 한국과 같은 의식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의외로 MLB의 선후배 관계는 철저히 지켜지고 있고, MLB의 긴 역사와 함께 전통으로 보존돼 있다. 한국과 비교할 때 방식과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선후배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 분명히 있다. 물론 폭행이나 모욕적인 행동은 포함되지 않지만 말이다.

박찬호의 마이너리그 시절 사진을 보면 유니폼에서 요즘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양말을 보이게끔 바지를 올려 입었다는 점이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마이너리거 개개인에게 그 점에 있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상당수 마이너리그 팀들은 모든 선수에게 바지를 올려 입는 내부규정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린다. 자기 소신껏 바지 길이를 선택할 수 있는 특혜는 메이저리그에게만 주어진다.

그렇다면 MLB 클럽하우스에는 어떤 룰이 있을까. 일단 음악에 대한 선택권은 선배들에게 있다. 후배가 감히 클럽하우스에 있는 MP3나 CDP를 만지지 못한다.

최희섭은 시카고 컵스 시절 새미 소사가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놓아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 전 실시되는 타격훈련 때 외야의 야구공 줍기도 당연히 후배들의 몫이다.

불펜에 소속된 투수들에게도 그들만의 룰이 있다. 일단 신인급 불펜투수는 경기 시작 전에 불펜에 나가 지키고 있어야 한다. 노장 불펜투수들은 3회부터 5회 사이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특급 좌완 불펜투수였던 마이크 스탠턴의 경우에는 경기가 시작됐는데도 낮잠을 자다가 3회가 끝날 무렵 겨우 정신 차리고 준비하고는 했다.

선후배 규율은 야구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전용기나 버스에서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일단 베테랑급 선수들은 뒷좌석을 차지한다. 아무리 촉망받는 유망주라도 뒷좌석은 절대 차지할 수 없다.

그리고 비행기 자리 배치에서 선배가 자리를 요구할 경우 두말없이 일어나야 한다. 클럽하우스 도우미들이 장비와 가방을 옮겨주지만 이동시 맥주와 음료는 신인급 선수들이 챙겨야한다.

신인급 선수들은 조용히 경기장에 나와 조용히 사라지곤 한다. 2, 3년 정도의 경력이 쌓이면서 조금씩 인정받을 수 있지만 노장 선수들과 눈도 마주치기 힘든 것이 루키급 선수들의 위치이고 현실이다.

경기 중 홈런을 쳐도, 삼진을 당해도, 조용히 덕아웃으로 들어와야 한다. 너무 눈에 튀는 세리머니는 선배들에게 지적사항 1순위다.

메이저리거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들만이 이해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법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 신인선수들의 의무다.대니얼 김 Special Contributor

OB 베어스 원년 어린이 회원으로 어릴 적부터 야구에 미쳤다. 8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뒤 뉴욕 메츠 직원을거쳐 김병현과 서재응의 미디어 에이전트코디네이터로그들과 영욕을 함께 했다. (twitter.com/danielkim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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