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편지] 호두 까먹고 새파래진 손… 죽을까봐 울던 어릴적 추억

입력 2009-11-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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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좋은 호두를 구해놨다는 이웃의 연락을 받고 과감히 100알을 사왔습니다.집에 오자마자 망치로 톡톡 깼더니 속이 꽉 차 있는 것이 먹어보니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호두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에서는 호두를 추자라고 불렀습니다. 집 뒤에 커다란 추자나무가 있었고, 가을이 오고 호두를 털면 한 자루쯤은 너끈히 딸 수 있었죠.

가족이 먹을 만큼 털고도 그 양이 상당해서 어머니는 그걸 시장에다 팔아서 제사장을 보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오빠와 저는 호두를 더 빨리, 더 많이 먹고 싶다는 생각에 몰래 장대로 나무를 툭툭 쳐서 하나씩 따 먹곤 했습니다. 키가 작은 제가 나무 여기저기를 돌며 “오빠야, 저쪽에 굵은 거 있다. 저거 쫌 따도”라고 하면 오빠는 부리나케 달려와서 장대의 끝부분을 잡고 톡톡 나뭇가지들을 치기도 했죠.

그렇게 떨어진 호두들은 혹여나 엄마가 볼까봐 얼른 주워서 아무도 안 오는 뒷산 오솔길에 숨어서 돌멩이로 깨서 먹었습니다. 몰래 따는 걸 아셨던 어머니께서 하루는 이러셨습니다. “너거들 추자 또 따 묵었제? 너거 아부지가 추자에 약 쳐놔서 그거 먹으면 손이 시퍼렇게 멍든데이 알겄나?”

저와 오빠는 절대로 호두 같은 건 안 따먹었다고 그 앞에선 손 사레를 쳤지만, 곧장 뒤뜰로 가서 손을 펴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말대로 정말 손 여기저기가 퍼렇게 멍들어 있었습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어서 울음이 터졌습니다. 오빠는 “괘안타 걱정마라”하면서도 내심 두려웠던지 안색이 새파래져서는 떨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돼서 잠을 자는데, 어찌나 걱정을 됐던지 밤새 호두 귀신에게 쫓기면서 딱딱한 호두로 맞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는 “느그 지난번에 손에 시퍼렇게 물든 거 있제 걱정 말그라. 원래 덜 익은 거 만지면 손에 물드는기다. 그르니까네, 앞으로는 다 익고나서 내가 ‘이제 묵어도 된다∼!’ 했을 때 묵어래이 알겠나?” 이러시더라구요.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친구에게 안 죽는다고 자랑하면서 얘기를 했습니다. 친구도 깜짝 놀라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집에 있는 호두를 따먹다가 손에 시퍼런 물이 들었었고, 제 말에 놀라서 자기도 죽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는 겁니다. 그 말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잘 익은 호두만큼이나 추억도 참 달고 고소합니다. 오빠랑 어머니는 이 얘기들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이번 주말에는 만나서 호두 까먹으며 옛날 얘기나 한보따리 풀어봐야겠습니다.

From. 박미자|대구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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