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의 오늘]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입력 2011-04-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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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가수 이난영 사망
‘사공의 뱃노래/가물거리면/삼학도 파도 깊이/숨어드는데/부두의 새악시/아롱 젖은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목포의 설움.’

애잔한 멜로디에 이별의 아픔을 그린 노래 ‘목포의 눈물’. 가수 이난영이 특유의 비음과 창법으로 부른 ‘목포의 눈물’은 1935년에 불렸다.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노래는 커다란 위안이었다.

1965년 오늘, 이난영이 서울 중구 회현동 자택에서 ‘이별의 눈물’과 ‘목포의 설움’을 안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48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전남 목포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이난영은 15세 때 배우를 꿈꾸며 태양극단에 입단했다. 1년 뒤 막간공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로 데뷔한 그는 19세 때인 1935년 ‘목포의 눈물’로 수많은 대중의 눈물을 자아냈다. 문일석이 작사하고 손목인이 작곡한 ‘목포의 눈물’은 가득한 한의 애달픈 정서가 대중의 가슴을 후벼 팠고, 노래는 불후의 명곡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이난영은 20세 때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했다. 슬하에 7남매를 두고 남편과 함께 해방 이후 KPK악극단을 조직, 가요계를 장악하기도 했지만 김해송이 6·25 전쟁의 와중에 납북되면서 삶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때 아픔으로 이난영은 오랜 세월 고통에 시달렸다.

그 7남매 가운데 한국가요사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김숙자와 애자 등 김시스터스와 김영일, 김태성 등 김브라더스가 있다. 어린 시절 가난한 삶을 함께한 오빠 이봉룡도 ‘낙화유수’, ‘선창’ 등 명곡을 남긴 작곡가이다.

한때 미국으로 건너가 김시스터스 등 자녀와 함께 했던 이난영. 그러나 자신이 그리던 고향과 조국을 잊지 못하고 돌아와 결국 생을 마감했다.

한편 그의 46주기, 그리고 남편 김해송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11일 KBS 1TV ‘가요무대’가 그의 삶과 노래를 되돌아본다.

윤여수 기자 (트위터 @tadada11)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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