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2018] 11년간 한우물…마침내 평창을 외치다

입력 2011-07-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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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 평창의 기적이 성공하기까지
2000년 김진선 전 지사 “강원도 유치” 선언하며 본격화
2010년·2014년 유치전 1차투표 1위 불구 아깝게 좌절
“동계스포츠 세계화” 새지평 전략으로 2전3기 끝 승리
2전3기, 무려 11년 동안 한 우물만 팠다. 평창이 3수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전쟁에 뛰어든 건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 최각규 초대 민선 지사가 획기적인 도 발전 방안으로 검토하고, 민선 2∼4기를 맡았던 김진선 지사(현 평창유치 특임대사)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본격화됐다.

그러나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첫 번째 도전이 좌절됐다. 평창은 당시 올림픽 공식후보도시로 선정된 밴쿠버(캐나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와 각축전을 벌였지만 유치권은 결국 밴쿠버에게 돌아갔다. 1차 투표결과 1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유럽세의 몰표전략 때문에 단 3표차(53-56)로 패배를 당한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는 2004년 재도전을 선언했다. 한 차례 유치전을 통해 쌓은 국제적 인지도와 인적 물적 노하우 덕분이었을까.

평창은 공식후보도시로 선정된 잘츠부르크, 소치(러시아)를 제치고 이듬해 실시된 현지실사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또 한 번의 분루를 삼켰다.

1차 투표에서 36표를 얻어 1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결선에서 4표(47-51) 차이로 소치에 역전당하고 말았다.

두 번의 쓰라린 패배에도 평창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좀더 신중하게 접근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만큼 동계올림픽 개최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감성적인 접근방식을 접고, 아시아 지역의 올림픽 개최를 통한 동계스포츠의 세계화에 역점을 뒀다. 그래서 슬로건도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의미의 ‘뉴 호라이즌스(New Horizons)’다.

한국인의 ‘삼세번’은 통했다. 무엇보다 2번의 아픔이 있었기에 이번 승리가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더반(남아프리카공화국)|홍재현 기자 (트위터 @hong927)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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