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훈련지서 만난 LG 김기태 감독 “떠난 선수 빈자리, 남은 선수들엔 기회”

입력 2011-11-2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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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 잘나가던 LG가 속절없이 추락한 8월 21일. 수석코치였던 김기태 LG 감독(42·사진)은 삭발을 한 채 운동장에 나타났다. 선수도 아닌 코치가 파르라니 깎은 민머리라니…. 김 감독은 입을 열기 전까진 무서워 보일 수 있는 인상이다. 팀 성적이 안 좋으니 표정인들 좋았겠는가.

그땐 몰랐다. 정확히 3개월이 지난 21일 마무리 훈련 중인 진주 연암공전에서 만난 김 감독의 머리엔 흰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프로야구 감독, 그것도 인기 팀인 LG 감독은 야구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다. 그렇지만 최근 9년 연속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LG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로 불린다. 김 감독 역시 팬들의 비난을 숱하게 들으며 ‘현재 위치’에 올랐다. 그의 하얗게 센 머리에는 그간의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흰 머리가 많이 는 것 같다.

“감독이 되고 나서 정말 힘들었다. 전임 박종훈 감독님에 대한 죄송함이 컸다. 팬들로부터 욕도 정말 많이 먹었다. 감독 통보를 받은 저녁 혼자서 캔 맥주 마신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성적에 대한 부담이 클 텐데….

“사실 팬들이 욕을 하실 만하다. 9년 연속 4강에 못 들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지금 욕하시는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팬들의 미움을 사랑으로 바꿀 자신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감독직을 맡지도 않았을 거다.”

―전력 보강 등의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따지고 보면 우리 선수들은 참 불쌍하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또 못했을 때 팬들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을 갖는다. 그런 걸 없애는 게 급선무다. 선수들에게 ‘올 한 해만 자신의 모든 걸 다 버리고 (4강 탈락의) 늪에서만 벗어나 보자’고 주문했다. 개개인의 능력만 보면 좋은 팀이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이택근과 송신영이 팀을 떠났다. 조인성과도 아직 계약을 못했다.

“3명과의 우선 협상이 결렬된 19일은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런데 선수들에게 ‘자기 인내력을 시험해 보고 이겨내라’고 말해온 내가 이걸 못 이기면 안 되겠더라. 요즘은 즐겁게 생각한다. 나간 자리에 보상 선수 2명이 오고 보상금까지 받지 않느냐고. LG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내부 선수들에겐 기회다. 빈 포지션을 향해 달려들면 된다. 기회는 왔을 때 스스로 잡는 거다.”

―선수들에게 특별히 주문하는 게 있나.

“야구를 못하는 건 괜찮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걸 안 하는 건 용서가 안 된다. 전력질주, 콜 플레이, 베이스 커버, 선후배 간의 예의 지키기 등은 기본 중 기본이다. 억지로 강요하진 않는다. 하기 싫은 선수는 그냥 집에 가서 쉬면 된다. 내가 감독일 땐 이런 선수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밖에서 본 LG와 직접 맡아본 LG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 선수들이 정말 다들 착하다. 그런데 착한 것만으론 안 된다. 운동장에서는 철저하게 냉정해야 한다. 그라운드에는 9개밖에 자리가 없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나는 절벽과 같다. 그런 처절함을 가져야 한다.”

―LG는 모래알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지난해부터 그런 일이 종종 있긴 했다. 최근에도 한 투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상한 글을 올리지 않았나. 그날은 선수단 미팅 자체를 하지 않았다. 왜 잘못한 한 사람의 책임을 잘하는 선수 50명이 져야 하나. 선수들에게도 판을 깨는 행동만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4강에 대한 구상을 어떻게 하고 있나.

“대충 큰 그림은 있다. 박현준과 재계약이 확정된 리즈, 주키치는 선발이다. 여기에 (후반기에 돌아올) 봉중근이라는 히든카드가 있다. 나머지는 남은 전력으로 퍼즐 맞추기다. 전력을 떠나 4강은 결국 어느 팀이 더 절실하냐의 문제다. 가족에게, 팬들에게 떳떳해지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우리 선수들도 다 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진주=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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