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최양락-(오른쪽)남희석. 사진 제공=남희석
● 쉰, 마흔 하나…두 노장의 개그 투혼
“최 선배, 선배, 주철이가 이 프로폴리스(꿀벌이 식물로부터 수집하는 수지질의 혼합물)를 뭐라는 줄 아세요? 폴리에스테르래요. 아, 웃겨 죽겠어요. 진짜 모르는 건지, 웃기려는지.”최양락(50)과 남희석(41), 후배 개그맨 김주철(32)이 모인 자리가 시끄럽고 정신없다. 최양락과 남희석의 인터뷰 자리에 김주철은 잠깐 들리듯 앉아서는 꼼짝 않고 나갈 생각을 않는다. 눈만 껌뻑이다 “최양락은 개그계의 회장님, 남희석은 사장님”이란다. 까마득한 선배지만 어려움보다는 두 선배와 함께 있는 것을 마냥 즐기는 눈치다. 최양락과 남희석 역시 후배와의 장난에 웃음이 그칠 줄 모른다.
두 사람은 진행도 해보고, 예능 출연도 해봤지만 개그 무대가 바로 고향 같다며 편안해한다. 또 둘은 오랜만에 함께 호흡을 맞추는 자리라 반갑고 기대된다며 서로 격려하기도 한다.
최양락과 남희석은 지난 1990년대 SBS ‘좋은 친구들’에서 호흡을 맞추고 약 10여 년 만에 채널A ‘개그시대’에서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고 있다.
두 사람의 투 샷이 반갑기는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 오랜만의 복귀라 개그감이 떨어진 것은 않을까, 나이가 들어 몸이 노쇠해 몸 개그가 힘든 건 아닐까, 잘 나가는 후배 개그맨들이 부럽지는 않을까.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답했다.
돌아온 노장들, 그들의 개그 무대 뒤 서러움과 즐거움, 앞으로의 기대는 무엇일까.
▶ “요즘 개그 스토리 짧고 빨라…쉽지 않네”
(왼쪽)남희석-(오른쪽)최양락. 사진 제공=남희석
“예전에는 개그가 중편, 단편으로 있었는데 요즘 개그는 해프닝 정도에요. 너무 빨라 정신이 없네요.”
노장 개그맨 최양락과 남희석은 요즘 개그 트렌드를 이야기하며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실제로 최근 개그 코너들은 짧은 스토리에 웃음 포인트도 끊이질 않는다. 채널도, 프로그램도 많아지니 시청자들은 재미를 위해 자신들의 시간을 쉬이 내어주지 않는다.
“예전 시청자들은 두 개밖에 없는 채널에, 개그프로그램도 ‘유머 일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밖에 없었어요. 거기서 나오는 유행어를 달달 외워 직장과 학교에서 써먹었죠. 지금은 뭐 재미있는 프로그램들 워낙 많으니…. 그리고 누리꾼들이 더 웃겨요. 어떻게 그런 참신하고 재미있는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는지, 인터넷에 있는 유머만 잘 써도 개그맨 할 수 있을 것 같다니까요.”(최양락)
최양락은 “개그맨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남희석도 한마디 거든다.
“개그하기 쉽지 않죠. 반에서, 동네에서 제일 재미있어야 올 수 있는 곳이 됐잖아요. 쉽지는 않지만 어떻게 해요, 개그가 가장 재미있는 걸. 또 최양락 선배와 함께 오랜만에 개그 호흡 맞출 수 있는 기회니 이렇게 냉큼 다시 무대로 돌아왔죠.”(남희석)
▶ 가장 배울 것 많은 후배? “김준호와 김원효”
두 사람이 꼽은 후배 개그맨들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끼’다.
최양락은 “요즘은 춤, 노래, 성대모사 못하는 게 없다. 개인기가 정말 뛰어나다”고 후배들을 칭찬한다. 이어 “우리 시대에는 개그맨 경쟁률이 2:1, 3:1 정도였어요. 지금은 몇백대 일이잖아요. 거기서 살아남은 경쟁력이 있는 거죠”라며 감탄을 내보였다.
남희석은 특히 눈여겨보는 후배 개그맨이 있다며 “KBS ‘개그콘서트’에서 ‘감수성’의 김준호,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원효가 참 대단한 것 같다”고 칭찬한다. “보고 있으면 다른 개그맨들과 호흡을 맞추는 점, 능숙한 연기 솜씨 등 배울 점들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밖에도 남희석은 KBS와 SBS 출신 개그맨들의 특징이 각기 다르다며 설명했다.
“KBS 개그맨들은 스토리나 틀을 갖추고 개그 짜는 것을 잘해요. SBS 개그맨들은 대학로 공연을 많이 해봐서인지 그때그때 순발력이 좋고요. 특히 20대 방청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남희석)
두 사람은 후배들의 자유분방함도 장점이라며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코미디언 실보다 오히려 군대가 더 편할 정도였어요. 무대에서 웃기는 사람들이다 보니 무대 아래서는 좀더 엄격하게 구분해야 선후배가 흐트러지지 않는다고요. 지금은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예요. 아이디어 회의 때도 자유롭게 의견 내며 낄낄대고, ‘뺀찌’ 먹어도 또 서로 낄낄 웃어요. 이렇게 서로 웃으며 아이디어를 짜면 녹화, 방송도 재미있어지더라고요.”(최양락·남희석)
▶ 갈비뼈에 금 가고 몸이 고생…“그래도 개그가 좋다”
아무리 개그가 좋아 개그무대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그들의 나이 쉰, 마흔 하나다. 무대에서 이리저리 뛰고 맞기도 하는 개그는 다소 무리일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두 사람은 몸이 고생한다며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다.
“최양락 선배, 체력 하나는 정말 장사에요. 그런데 겁이 많아요. ‘개그시대’ 처음 시작했을 때 둘이 치고, 받고, 때리는 코너가 있었어요. 진짜 때리라고 해서 때리려는데 몸을 자꾸 움츠려서 때릴 수가 없어요. 굉장히 무서워해요. 으이그.”(남희석)
최양락은 당시 상황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이내 “그랬다”고 고백한다.
“아우, 깜짝깜짝 놀라서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실제로 갈비뼈에 금이 갔어요. 진짜 아파요. 몇 주 참 재미있게 했었는데. 그 뒤로 아휴, 못 하겠더라고요. 내가 때리고, 남희석이 맞는 상황극은 재미가 없고. 결국 코너가 없어졌죠.”(최양락)
남희석은 이렇게 몸 고생하는 선배 최양락이 안타까운지 인터뷰 하는 날, 직접 프로폴리스를 준비해 최양락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이를 본 김주철은 “기자님, 이게 폴리에스테르라고 하는 건데요. 몸에도 좋고 피부에도 정말 좋은 거래요”라고 설명을 한다. 이를 본 최양락과 남희석은 “웃겨서 미치겠다”며 후배의 장난(?)에 마냥 ‘허허’ 웃는다.
▶ ‘대접받는’ MC보다 ‘저질’ 콩트가 딱!
(왼쪽)남희석-(오른쪽)최양락. 사진 제공=남희석
최양락은 “요즘 개그맨들 보면 대부분 20, 30대다. 40대는 물론이거니와 나 같은 쉰 살은 정말 없다”며 “이 나이에 이렇게 콩트 무대에 선다는 게 나도 가끔 신기하다”고 말문을 열고 콩트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이경규 씨도 나이가 많죠. 하지만 그 분은 콩트가 아니라 진행이잖아요. 진행에 있어서는 송해 선생님이 85세 등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몇몇 있어요. 하지만 콩트는 없어요. 콩트가 고생을 많이 하는 것에 비해 인정을 받기는 힘든 분야기 때문이죠. 대중의 인식이 MC 등에 비해 콩트는 한수 아래, 저질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있지 않나요?”(최양락)
그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가장 좋아하는 일인 걸”이라며 하하 웃는다. 이런 면에서 후배 남희석이 정말 대단하다며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남희석이 정말 대단하게 보여요. 대접 받지 못하는 이런 분야에 다시 제 발로 찾아왔어요. 과거 ‘미녀들의 수다’나 ‘여유만만’, ‘희희낙락’, 최근 ‘이제 만나러 갑니다’까지 충분히 MC 자질 있는 개그맨인데 말이죠. 이런 프로그램을 해야 사람들이 ‘우와’하며 괜찮게 보고, 스스로 무게도 잡을 수 있거든요. 이런 장점 때문인지 점점 MC쪽으로 일하는 개그맨들이 많은데 콩트는 애정이 없이는 할 수 없는 분야에요.”(최양락)
이를 묵묵히 듣던 남희석은 “맞아요”라고 수긍한다.
“그런데 콩트가 가장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재미없는 일은 죽어도 못해요. 최양락 선배와도 다시 해보고 싶었고.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아요. 교통사고 날지, 지구가 멸망할지 그냥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일하다 죽는 거죠. 하하”(남희석)
즐겁기는 해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프로그램의 부족한 인지도가 아닐까? 하지만 두 사람은 무척 의연한 태도다. 남희석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려면 한 1년 정도는 더 있어야할 것 같아요”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KBS에서 개그프로그램 자리 잡는 데에 5,60년 걸리고, SBS도 20년 정도 걸렸어요. 저희는 지금 막 시작했는데 반응이 바로 올 것이라고 기다리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아요. 첫술에 배부르겠어요? 오히려 너무 빨리 날아가면 저쪽에서 의욕 상실하죠. 서서히 자리 잡아갈 겁니다.”(남희석)
최양락은 앞으로 개그 프로그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드라마는 최불암 선생님, 이순재 선생님이 아버지 역할하고, 젊은 배우들이 아들, 딸 역할을 하잖아요? 그런데 개그는 아버지 역할도 젊은 배우들이 어른 분장을 하고 해요. 우리가 함께 껴서 하면 좀더 색다르고, 실험적인 개그들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남녀노소 함께 만들고, 남녀노소가 함께 시청할 수 있는 국민 개그를 만들고 싶어요.”
노장다운 여유와 솔직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두 사람의 바람처럼 느리더라도 꾸준히, 그리고 선후배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개그, 보는 이들도 더욱 풍요롭고 함께 즐기는 개그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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