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Essay] 여풍당당 올림픽…덴마크 깬 ‘우생순’이 더 빛나는 이유

입력 2012-08-01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12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진보 성향의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영국의 근·현대사를 짚으며 노동운동을 다루기도 했고, 무상의료제도를 비중 있게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들의 집회 장면이었어요. 영국에서조차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지(1928년)는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올림픽 역시 1896년 제1회 아테네대회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러다 1900년 파리올림픽에서 테니스와 골프 등 2개 종목이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지요. 역도처럼 격한(?) 종목은 2000년이 되어서야 금녀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복싱은 이번 런던올림픽부터고요. 만약 장미란(29·고양시청)이 10년만 빨리 태어났어도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을 못 맺게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간의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여성들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구기종목에선 한국여자핸드볼을 따라올 팀이 없습니다. 올림픽 무대에서만 금 2개, 은 3개, 동 1개를 땄습니다. 30일(한국시간) 런던 올림픽파크 내 핸드볼 아레나에선 핸드볼 여자 조별리그 B조 2차전 한국과 덴마크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덴마크는 2004아테네올림픽 결승에서 편파판정을 등에 업고 우리에게 패배를 안겼던 팀이죠. 우선희(34·삼척시청)와 김차연(31·오므론) 등은 당시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덴마크 골키퍼 카린 모르텐센(35) 역시 아테네올림픽대표였다고 하네요. 우선희는 “일부러 눈도 안 마주쳤다”고 했습니다.

25-24, 한 점차 승리가 확정되자 대표팀은 금메달이라도 확정지은 듯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부선수’ 우선희는 “여자로서 가정과 운동을 다 챙기기가 힘들었다”고 했고, 이은비(22·부산BISCO)는 “‘너처럼 작고(164cm) 운동할 것처럼 안 생긴 애가 무슨 핸드볼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생순’의 주역 임오경(41·서울시청) 감독은 “우리 때만 해도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 삐딱한 시선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녀들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뚫지 않았다면, ‘우생순’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공유해본 사람들끼리 더 뭉치는 법이라고 하죠. “덴마크전에서 언니 몫까지 잘 해낼 수 있지? 난 믿는다.” 부상 중인 ‘에이스’ 김온아(24·인천시체육회)가 이은비에게 줬다는 손 편지…. 그것이 한국여자핸드볼의 영광을 만든 그녀들의 자매애를 대변하는 것 같아 더 애틋합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