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41차례, 번개가 내리쳤다… 볼트 100m 2연패

입력 2012-08-0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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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걸음 만에 올림픽新… 2, 3위 선수보다 보폭 커
출발 더 빨랐다면 세계新… 척추측만증에 따른 보폭 차 되레 폭발적 스피드 동력으로
누가 그에게 등을 보여줄 수 있을까.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은 우사인 볼트(26·자메이카)의 대회였다. 키 195cm의 볼트가 남자 육상 100m 결선에서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다른 선수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9초69의 당시 세계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때 세계는 혜성처럼 등장한 ‘인간 탄환’에 경악했다.

6일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8만여 명의 시선은 남자 100m 결선 7번 레인에서 몸을 푸는 볼트에게 쏠렸다. 출발 총성과 함께 주자들이 쏜살처럼 결승선을 향해 달려 나갔지만 우승은 중반부터 엄청난 속도로 치고 나가 9초63의 올림픽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볼트의 차지였다. 남자 100m 올림픽 2연패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우승한 미국의 칼 루이스에 이어 두 번째. 당시 루이스는 벤 존슨(캐나다)에 뒤져 2위로 결승선을 끊었지만 벤 존슨이 금지약물 복용으로 실격 처리된 뒤 1위로 올라섰다. 두 대회 연속 100m 결승선을 가장 먼저 끊은 것은 볼트가 처음이다.


○ 출발 반응속도 0.165초

볼트는 약점으로 꼽히던 출발 반응속도에서 0.165초로 8명 가운데 5위에 그쳤지만 이내 장점인 넓은 보폭을 앞세워 정확히 41걸음(스트라이드) 만에 레이스를 마쳤다. 2위 요한 블레이크(자메이카·9초75)는 45.5걸음, 3위 저스틴 게이틀린(미국·9초79)은 42.5걸음이었다.

단거리의 주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보폭을 크게 하면서 한 걸음 내딛는 주기(피치)를 줄이는 스트라이드 주법이고 다른 하나는 보폭을 줄이는 대신 발걸음을 빨리 하는 피치 주법이다. 피치 주법의 대표적인 선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9초79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지만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기록이 취소된 벤 존슨이다. 그는 당시 46걸음, 초당 4.7걸음을 뛰어 레이스를 마쳤다. 이날 볼트는 초당 4.3걸음을 뛰었다.

그렇다고 이날 볼트의 스트라이드가 세계 최고는 아니다. 백인 최초로 10초벽을 넘은 크리스토프 르메트르(프랑스)는 보통 40.5보에 100m를 뛴다. 대신 피치 수가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키가 크면 보폭이 커지고 보속은 느린데 현재까지 볼트는 두 주법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볼트는 2009년 세계기록(9초58)을 세울 때 출발 반응속도가 0.146초였다. 당시와 똑같은 출발 반응속도를 기록했다면 볼트의 이번 올림픽 2연패 기록은 9.61초까지 당겨질 수 있었다. 팀 몽고메리(미국)가 2002년 파리 그랑프리파이널대회에서 기록했던 출발 반응속도(0.104초)로 뛰었다면 볼트는 9초57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

볼트는 부상이 잦은 선수다. 2010년 6월 아킬레스힘줄을 다쳤던 볼트는 8월에 허리 부상까지 겹치며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볼트의 허리 부상은 선천성 척추측만증 때문이다. 척추측만증은 척추가 C형 또는 S형으로 휘어 양 어깨나 골반의 좌우 높이가 달라진 상태를 말한다. 볼트는 가만히 서 있을 때 오른 어깨가 왼 어깨에 비해 눈에 띄게 낮다. 이 질환은 늘 달려야 하는 육상 선수에게 치명적이다. 척추와 골반, 그리고 허벅지 근육까지 충격을 받는다. 볼트의 경우 지속적인 치료와 근육 훈련으로 상태가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뛸 때마다 미세한 통증이 따른다.

하지만 볼트는 전문 의료진의 도움과 엄청난 훈련을 통해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해 왔다. 하체 근육을 키워 척추측만증으로 인한 부상 가능성을 상쇄하는 방식이다. 양쪽 골반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볼트의 보폭은 왼발과 오른발이 큰 차이가 난다. 왼발을 내디딜 때 보다 오른발을 내디딜 때 20cm가량 짧다. 전문가들은 이 차이가 되레 폭발적인 스피드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한다. 왼발을 내디딜 때 골반이 크게 내려가기 때문에 더 큰 힘으로 지면을 박찰 수 있기 때문이다. 하체 근육이 받쳐 주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볼트의 아성은 최근 흔들렸다. 6월 자국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블레이크에게 1위를 내준 게 빌미였다. 이때도 볼트는 허벅지가 정상이 아니었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도박사들이 예년에 비해 볼트의 우승 가능성을 낮게 본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볼트는 불세출의 스프린터답게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볼트는 평소 9초40까지는 가능하다고 말해 왔다. 9초50의 벽을 무너뜨릴 인간 탄환은 현재로서는 볼트뿐이다.

한편 이날 100m 결선은 전체 출전 선수의 기록으로 볼 때 ‘사상 최고의 레이스’로 남게 됐다. 출전 선수 7명이 9초대를 끊고 그중 3명이 9초80 이하를 기록한 것은 역대 가장 빠른 100m 경기였다. 부상으로 레이스 후반을 포기한 아사파 파월(자메이카·11초99)이 제 컨디션이었다면 결선 출전자 8명 전원이 9초대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볼트는 10일 남자 육상 200m에 다시 나선다. 100m와 200m 대회 2연패는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볼트는 말했다. “전설에 한 발 더 다가갔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블레이크가 날 깨워… 200m도 우승해 전설 되겠다”▼

볼트 “의심하는 자들이여, 너희가 틀렸노라”


“마치 (요한) 블레이크가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올림픽이 곧 열리는데 넌 준비됐니?’라고 묻는 것 같았다. 자고 있는 나를 깨운 모닝콜이었다. 훈련에 다시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우사인 볼트는 남자 100m를 2연패한 뒤 자신의 훈련 파트너였던 요한 블레이크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볼트는 블레이크가 자신의 2연패를 만들어 준 자극제라고 밝혔다. 그는 “올림픽대표 선발전 때 내가 블레이크에게 두 차례(100m, 200m)나 진 게 나를 일깨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해에 나는 이렇게 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다시 챔피언이 되기 위해 나를 일깨웠다”고 말했다.

볼트는 200m마저 우승해 육상의 ‘전설’이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는 “런던의 전설이 되기 위해 한 걸음 더 전진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200m 우승이다. 그것은 나의 메인이벤트”라고 밝혔다.

볼트는 “나는 지금까지 나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그들이 나에 대해 의혹을 가지는 게 오히려 나에겐 에너지를 준다. 나는 그들 때문에 항상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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