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View]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비치니…NC 이태양 탄생 설화

입력 2013-05-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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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이태양이 엄지를 내밀며 최고의 투수가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대로 NC 마운드의 태양으로 떠오르고 있다. 잠실|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NC 마운드의 태양으로 떠오른 이태양

제가 태어나는 순간 갑자기 해가 떠올랐다고
할아버지·아버지께서 ‘태양’이라고 이름 지어

팔 안 올라가 밑으로 던진 게 지금까지 왔죠
윤강민 선배한테 허리 쓰는 법 배워 힘 보강

이름처럼 빛나는 피칭? 미트만 보고 던질 뿐


잔뜩 흐린 날씨였다. 한 산모가 진통 끝에 출산을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떠올랐다.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름을 ‘태양’이라고 지었다. 신화나 설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NC의 마운드의 태양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태양(20)은 자신의 이름 그대로 2013년 프로야구에서 가장 뜨거운 신인 중 한명이다. 3승1패, 방어율 3.13. 기록을 상세히 뜯어보기 전까지는, 그저 제 몫을 다하는 똘똘한 젊은 투수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12일까지 전체 투수 중 피안타율 1위(0.186), 이닝당 출루허용(WHIP) 1위(0.91)를 달리고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모두 정상급 투수만 기록할 수 있는 수치다.

누가 이렇게 멋진 이름을 지어줬을까? 궁금해서 먼저 묻자 자신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에게 전해들은 신화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 민망한 듯 웃으며 “정말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태어나는 순간 갑자기 해가 떠올랐다고.”

1993년 1월 28일 이태양이 태어났던 순간처럼 20년이 흐른 2013년 새로운 잠수함투수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태양은 최근 프로야구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투수다. 시속 140km를 넘는 직구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변화구가 화려한 것도 아니다. 사이드암투수지만, 우타자 몸쪽으로 휘어 떨어지는 싱커도 아직 던지지 않는다. 그의 강점은 정확한 제구와 더불어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을 낮게, 더 낮게, 그리고 느리게, 더 느리게 던진다는 점이다.

투수가 시속 150km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지면 관중의 가슴은 시원하게 뚫린다. 그러나 이태양의 공은 다르다. 과연 저 공이 통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해 하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배트를 피해 포수 미트에 꽂힌다. 이제 스무 살,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는 신예에게 과감히 선발을 맡긴 김경문 NC 감독은 “1군에서도 지난해 퓨처스(2군)리그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던진다. 마운드에서 싸울 줄 아는 투수다”고 말했다.

공이 느리면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보다 담력이 더 좋아야 타자와 승부할 수 있다. 주자가 있거나 강타자 앞에서 갑자기 무너지는 투수들 대부분은 자신감이 떨어져 조금이라도 빨리 던지려다 낭패를 보곤 한다. 그러나 이태양은 한화 김태균이 타석에 있어도 느릿느릿, 그러나 원하는 곳으로 날카롭게 제 공을 던진다.

NC 이태양. 스포츠동아DB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진다!


-마운드에서 항상 자신감 있게 공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진다. ‘타석에 누가 있다’, ‘어떤 상황이다’,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사실 경기운영도 부족하고, 특히 공이 빠른 것도 아니다. 씩씩하게 던지는 방법밖에 없다.(웃음)”


-원래 성격이 마운드에서처럼 호전적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동료, 선배들도 ‘너는 참 신기하다.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사실 내 공으로 타자를 이기기 위해선 미트만 보고 집중해서 던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낮게, 더 낮게 제구되는 공이 인상적이다. 타자들이 삼진을 당하고 범타를 치는 것도 무릎 쪽에서 절묘하게 떨어지는 공이 위력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항상 낮게 던지려고 한다. 빠르지 않기 때문에 공 끝의 움직임을 살려야 한다. 사이드암투수의 장점을 살리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처음부터 사이드암투수는 아니었다!


-어떻게 야구를 시작했나? 처음부터 사이드암투수였는지도 궁금하다.

“친형이 2개월 정도 야구를 했었지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청주 내덕초) 4학년 때 6학년 야구부 형이 ‘형들이 중학교로 진학해서 야구부에 사람이 없다’며 모집하러 다녔다.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


-대부분 야구를 하고 싶어서 부모님을 조르고, 혹은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야구를 시작했던데. 별 감흥 없이 시작한 야구, 부모님은 어떠셨나.

“‘저 야구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꼭 해야 하니?’라고 말씀 하셨다. 처음에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분위기였는데, 금세 무심한 듯 바라봐주셨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야구에 많은 재미를 느껴서 열심히 배웠다.”


-그래서 곧장 두각을 나타냈나?

“하하. 전혀 아니다. 주전자만 들고 다녔다. 외야에서 공만 모으고. 사이드암으로 던지기 시작한 것도 팔이 안 올라가서 그런 거다. 5학년 때인데 팔이 남들처럼 안 올라가니까, 코치님이 ‘그러면 차라리 밑으로 던져’,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투수로 언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나?

“힘이 부족해서 중학교 때까지 잘 못 던졌다. 그 때 지금 NC에서 같이 뛰고 있는 윤강민(23·투수) 선배에게 허리 쓰는 법을 배웠다. 사이드암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그 이후로 공이 부쩍 좋아졌다.”


○이닝이터가 꿈!


-특별지명으로 넥센에서 NC로 옮겼다. 다른 특별지명 투수들은 대부분 베테랑(이승호·송신영·고창성)인데, 혼자 신인급이었다. 당시 넥센에서 많이 아쉬워했다는 말이 들렸다. 고향은 청주다. 서울에서 데뷔했고, 지금은 창원에서 뛰고 있다.

“창원에 와서 너무 좋다. 사실 서울보다는 강진에 더 많이 있었다.(웃음) 창원에 오니까 밤에 반짝반짝 불빛도 보인다. 동료 선수들도 잘해줘서 기분 좋게 지내고 있다.”


-선발을 맡으면서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 타자들을 만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상대는 누구였나?

“한 명 한 명 다 힘들다. 쉬운 상대가 없다. 전력을 다해야 한다. 타자를 생각하고 의식하면 안 된다. 역시 미트만 보고 던져야 한다.(웃음)”


-선발을 맡아 ‘이태양’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리고 있다. 앞으로 어떤 투수가 되고 싶나?

“투수는 역시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게 최고인 것 같다. 항상 매 경기 등판하는 날마다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다. 그리고 아직 한 시즌을 처음부터 끝까지 뛰어본 적이 없다. 많이많이 던져서 시즌 끝까지 마운드에 서고 싶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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