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프리즘] 야구기자와 담당팀의 관계

입력 2013-06-11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얼마 전 부진에 빠진 KIA 선수단이 단체삭발로 결의를 다진 뒤였습니다. 제가 올 시즌 KIA 담당기자인 줄 아는 친구가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너도 머리 깎았냐?” 한참을 고민한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ㅎㅎ.”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제가 하는 일을 소개하면, 거의 매번 빠지지 않고 듣는 말이 있습니다. “야구 원래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한마디 또 있습니다. “그럼 담당팀 응원하시겠네요?”

#스포츠동아 야구 담당은 부장을 포함해 모두 10명입니다. 데스크인 부장을 빼고 9명이 9개 구단을 한 팀씩 전담합니다. 매체의 성격에 따라, 또 회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스포츠전문지인 우리 신문은 야구 담당 기자가 다른 곳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스포츠동아 야구기자들은 이처럼 ‘1인 1구단 체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장을 커버하는 날이면, 대개 경기 시작 3시간 전쯤 야구장에 도착합니다. 관례대로 먼저 훈련하는 홈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를 만나고, 이어 원정팀 선수단을 만나죠. 양 팀 감독과 얘기하면서 전반적으로 각 팀이 돌아가는 상황을 취재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 구장에 한 명의 기자가 나가기 때문에, 이 때는 담당팀뿐만 아니라 상대팀 기사도 처리합니다. 취재 내용은 재미난 박스 기사든, 아니면 심층적 분석기사든 다양한 가공 절차를 거쳐 지면으로 옮겨집니다.

#현장에 나가면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눕니다. 하지만 기자들도 말을 잘 걸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날 선발등판을 앞둔 투수죠. 물론 개인차가 있습니다만, 등판을 앞둔 대부분의 선발투수는 민감한 상태라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자 입장에선 ‘멘트를 잘 날리는’ 선수를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기사거리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프로선수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상품이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실력뿐아니라 포장을 잘 하는 ‘말발’도 필요합니다. 두산 홍성흔, NC 이호준 같은 선수들이 기자들이 좋아하는 대표적 ‘친 미디어’ 선수죠. 롯데 손아섭 선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한 팀 담당이 되면 스프링캠프도 취재하고 그 팀의 페넌트레이스 경기의 절반, 적어도 3분의 1 이상을 현장에서 지켜봅니다. 얼굴 보면 정든다고, 담당팀 선수단과 자주 마주하게 되면 아무래도 친밀감이 높아지죠. 코칭스태프와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처음 야구장에 나갈 때, 선배들이 전해준 가르침이 있습니다. “기자로서 담당팀에 대해선 애정을 갖되, 팬이 돼선 안 된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객관적 입장에서 사실을 전달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하지만 기자도 사람인지라,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선수가, 감독이, 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사에 그것이 포함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가능한 한 그 ‘선’을 지키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할 땐 데스크에게, 선배에게 혼도 나죠. 스포츠동아는 한 시즌이 끝나면 담당팀을 조정합니다. 한 구단을 오래 맡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지만, ‘애정’이든 ‘애증’이든 그것에 함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도 머리 깎았냐’는 친구의 문자에 제가 웃음으로 답한 건 짧은 문자메시지에 많은 얘기를 담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친구도 제 웃음의 의미를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친구에게 다시 문자메시지를 보내야겠네요. “언제 야구장 한번 가자. 맥주 한잔 마시며 너 좋아하는 팀, 내 목청껏 응원할게.”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dohoney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