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풀스토리] ‘영원한 LG맨’ 유지현 코치의 치열한 삶

입력 2013-10-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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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코치. 스포츠동아DB

1994년 KS 우승·신인왕…엘리트 코스
작은 체격·어깨 통증 극복 위해 구슬땀
유 코치 “내 야구인생은 약점과의 투쟁”

다시 밟은 가을무대…땀의 소중함 역설


브라질 축구스타 히바우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세상에는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습니다. 범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어떤 영역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LG 유지현 코치(사진)는 야구를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벤치에 앉아본 적이 없습니다. 소년동아일보를 보고, 어머니를 졸라 리틀야구단에 들어갔고, 충암초등학교와 경기 때 감독 눈에 들어서 정식으로 입문한 이후 충암중∼충암고∼한양대∼LG로 이어지기까지 언제나 주전이었습니다. 국가대표도 도맡았고 1994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신인왕을 경험했죠. 스스로도 “야구에 관한 어떤 센스는 타고난 것 같다”고 인정합니다.

당시 유지현을 통해 LG 야구단, 아니 LG그룹의 이미지가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핸섬하고, 스마트하고, 자신감 넘치는 LG의 젊은 이미지는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렇게 화려함만 있는 것 같아도 정작 유지현 코치는 “내 야구인생은 약점과의 투쟁의 연속”이라고 떠올립니다. 첫째는 선천적으로 작은 체격입니다. 신은 그에게 야구 센스는 줬지만, 힘은 주지 않았죠. 작은 몸으로 어떻게 투수를 이길지를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선구안에 집착했고,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의 타격방법을 연마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스윙횟수에 집착할 때, 유지현은 어떤 스윙이 적합한지를 찾으려 했고, 몰입했습니다. 둘째로는 후천적인 어깨 통증입니다. 고교 2학년 때 경기 도중 팔꿈치 뼈를 다쳤는데 무리해서 출장을 강행하다가 어깨까지 상하게 됐죠. 2루수로 전향할 수도 있었지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수비범위가 좁아지기에 수비위치를 당기지도 않았죠. 이 모든 제약을 유지현은 발놀림, 풋워크로 극복하려 했습니다. 타구위치 판단을 반 박자 빨리 하기 위해서 투수의 볼 배합과 포수의 사인, 상대 타자의 타격성향까지 머리에 넣어야 했습니다.

또 지도자가 되려하니 단 한 번도 후보 생활이 없었다는 커리어가 오히려 약점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2006년 겨울 홀로 미국 시애틀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루키리그와 싱글A 팀을 1년씩 돌며 육성과 시즌 운영에 대해 배웠죠. 이 시절 최고의 소득은 “새로운 것을 배운 것이 아니라 확신을 얻어온 것”이라 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것이 정말 다른 선수들에게도 옳은 것인지를 검증하는 시간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 겨울 그는 운명 같은 LG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LG는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합니다. 플레이오프가 어떻게 끝나든 LG의 2013년은 찬란했습니다. 유지현 코치는 이번에도 LG의 일원입니다.


잠실|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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