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윤빛가람 “수비에 소홀했던 20년…다 뜯어고쳤다”

입력 2014-02-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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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미드필더 윤빛가람은 2010년 신인왕 수상 이후 줄곧 제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그는 올 시즌 화려한 재기를 다짐하고 있다. 서귀포|박상준 기자

■ 다시 신인의 자세로 제주 윤빛가람

그간 축구 하면서 수비는 생각 않고 훈련
나쁜 습관, 1∼2년 만에 고치려니 어려워

U-17 은사 박경훈 감독, 재기 기회 마련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해

올해는 책임감 갖되 부담감 없이 플레이

첫 태극마크를 달았던 2010년 8월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혜성 같이 나타났다. 그 앞에 붙는 수식어는 ‘천재 미드필더’였다. 경남FC에서 소녀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실감했다. 승승장구는 지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2011년 겨울 해외이적이 불발되면서 모든 일이 꼬였다. 원치 않았던 성남행과 태업논란을 거쳐 작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적을 옮겼다. 시즌을 마치고 받아든 성적표는 31경기 출전 1골2도움. 2010년 데뷔 첫 해 9골7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던 모습과는 너무나 딴판이었다. 오른 무릎을 다쳐 재활 중인 제주 윤빛가람(24)을 1월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그는 “부담감이 컸던 작년 시즌이었다. 올 해는 초심을 잊지 않고 신인 때의 자세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다”고 재기 의지를 다졌다.


● 박경훈 감독의 처방

제주 박경훈 감독과 윤빛가람은 오래 전부터 사제의 연을 맺었다. 박 감독이 17세 이하(U-17) 대표팀 감독 시절 윤빛가람을 직접 지도했다. 누구보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확인한 터였다. 성남에서 2군을 전전하며 풀이 죽어있는 윤빛가람을 딱하게 생각했다. 작년 2월말 그를 제주로 불러들여 다시 한번 재기의 시간을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시즌 내내 부진을 떨칠 수 없었다. 늦은 합류로 주전들과 손발을 맞춰보지 못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박 감독도 윤빛가람과 공존을 고민했다. 그는 “시즌을 마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 빛가람에게 득점이나 공격포인트에서 너무 많은 부담감을 준 건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윤빛가람도 “부담을 많이 가진 것은 사실이다. 뭔가를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박 감독은 1월 일본 오키나와로 전훈을 떠나기 전 윤빛가람을 찾았다. 속 시원하게 대화를 나눠보고 문제점을 진단하자는 취지였다. 박 감독은 평소 선수들과 자주 면담을 갖진 않는다. 선수들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준다. 이례적인 면담에서 고심의 흔적이 드러났다. 그는 “빛가람이 이젠 적은 나이가 아니다. 프로생활을 하면 앞으로 10년 조금 넘길 수 있을까. 일반적인 사회 초년생들에 비해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만큼 축구에만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 빛가람은 남들에게 없는 재능을 갖췄다. 태극마크를 다시 달아야 하고, 유럽무대로 진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부했다.

윤빛가람도 알고 있다. 그는 “감독님께서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하라고 하시더라”고 웃었다. 박 감독의 따끔한 충고가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았다. “감독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부분이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초심을 어느 순간 잊은 게 아닌가. 부담까지 안고 가야 하는데 아직 어려서 경험 부족을 느낀다. 도대체 예전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되묻곤 한다. 결국 초심이었다. 신인 때처럼 독하게 마음먹고 해보려고 한다.”


● 축구인생 20여년을 버리다

윤빛가람에게 따라붙는 꼬리표 중 하나가 ‘수비를 못 한다’는 평가다. 그의 포지션은 줄곧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수비가 약한 수비형 미드필더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윤빛가람은 공격 전개에 중심이 쏠린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탁월한 패싱력과 축구센스가 그의 장점이었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최적화된 포지션이었다. 그는 “경남에선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70%%가 공격에 비중을 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수비력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올림픽 탈락도, 최근 부진도 모두 문제점이 겹치면서 도드라졌다. 그는 스스로 ‘현대축구는 수비를 못하면 경기에 나갈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만큼 아픔을 겪었고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윤빛가람은 “사실 20여 년 동안 축구를 하면서 수비는 생각하지 않고 훈련해왔다. 그러니 부족한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1∼2년 만에 모든 걸 고치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고 토로했다.

윤빛가람은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적극성이 부족해 오해를 살 때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박 감독은 그런 성격을 오히려 두둔했다. 그는 “내성적이지만 상승세를 타면 무섭게 나아갈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적응기간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잘 알고 있는 만큼 올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윤빛가람과 송진형 등이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윤빛가람이 맞게 될 포지션은 박 감독의 표현대로 헬퍼(helper), 즉 도우미다. 미드필드에서 공을 소유하고, 송진형 황일수 드로겟 등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패스를 넣어주는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이다. 한층 발전된 수비력까지 발휘해주길 내심 기대하고 있다. 윤빛가람도 팀플레이에 힘을 보탠다. 그는 “내가 간 팀마다 2시즌 연속 하위그룹으로 떨어졌다. 나 때문인 것 같아 부담감도 죄책감도 컸다. 올해는 책임감을 갖되, 부담감은 없다. 진형이형이나 다른 스타플레이어들과 잘 맞춰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angju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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