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빅토르 안, 소치 ‘대리전쟁’의 승자일까?

입력 2014-02-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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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안.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일본의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참관하고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책을 냈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되고 점점 상업화되고 있는 올림픽에 대한 큰 실망감을 표현했다.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대리전쟁’ 때문에 우리는 베를린올림픽(1936년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이후 세계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라는 질문도 던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공식적으로 올림픽에서 메달 수에 따른 국가별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키의 표현인 ‘대리전쟁’처럼 많은 이들은 올림픽을 ‘총성 없는’ 국가대항전으로 받아들이고 열광한다.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은 2014소치동계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러시아에 안겼다. 시상식에선 러시아 국가를 불렀고, 폐막식에선 러시아 국기도 흔들었다.

이번 올림픽 기간 내내 안현수를 떠나보낸, 파벌싸움까지 횡행했다는 한국빙상계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대리전쟁’에서 한때 한국의 쇼트트랙 황제였던 선수가 러시아 국기를 달고 나와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러시아는 귀화한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빅토르 안에게 환호했다. 아직 러시아어도 잘 구사하지 못하지만 자랑스러운 국가대표로 여겼다. 이미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딴 최고의 선수가 모국을 떠나 귀화할 정도로 강력해진, 새로운 러시아의 힘에 어깨를 으쓱하며 환호성을 토해냈다.

그렇다면 한국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빅토르 안은 안현수라는 이름을 지우고 러시아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막대한 액수의 금전적 보상에다가 러시아대표팀 지도자 등 든든한 미래도 약속 받았다.

하루키가 느꼈듯이 러시아는 올림픽을 ‘대리전쟁’으로 치렀고, 가장 많은 금메달로 원했던 승리를 거뒀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빅토르 안뿐 아니라 수많은 인재를 스카우트했다. 그러나 안현수에게 올림픽은 국가대항전이 아니었다. “올림픽을 다시 한번 뛰고 싶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스포츠 전쟁에서 이기고 싶었던 러시아, 개인의 꿈을 이루고 싶었던 빅토르 안의 절묘한 만남.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모든 이들이 국적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개인의 선택을 막을 수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한국민은 올림픽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힘을 얻는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러시아 선수 빅토르 안이 남기고간 대한민국 체육계의 숙제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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