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 이상훈은 1993년 LG에 입단해 구단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렸다. 1995년 20승을 기록했고 1997년 마무리로 전환해 37세이브를 올리는 등 1990년대 LG전성기의 일등공신이었다. 스포츠동아DB
이상훈, 1994년 18승 1995년 20승…LG의 아이콘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는 1990년 출범 첫해부터 한국시리즈(KS)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프로야구에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이어 LG는 1994년 ‘신바람 야구’ 신드롬을 일으키며 81승의 가공할 성적으로 두 번째 KS 우승을 달성했다. LG가 지금까지 이뤄낸 두 차례 우승에서 KS MVP는 모두 김용수의 몫이었다. 김용수는 키 176cm·몸무게 72kg의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의 약점을 딛고, ‘노송(老松)’이란 애칭에 걸맞게 치열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구질 연마를 통해 최고 투수가 됐다. 그는 선발과 마무리로 전천후로 맹활약하며 ‘100승-200세이브’ 달성이라는 큰 족적을 남겼다.
중앙대를 졸업하고 1985년 MBC에 입단한 김용수는 1989년까지 당시엔 생소했던 전업 마무리로서 활약했다. 1986·1987·1989년 3차례에 걸쳐 20세이브 이상을 거뒀다. 그러다가 LG 창단에 맞춰 1990년부터 선발로 전환해 2년 연속 12승을 거뒀다. 김용수는 1993시즌부터 다시 마무리로 돌아가 3시즌 동안 86세이브를 성공시키는 등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1996년 선발로 복귀한 뒤 3시즌 동안 선발로 46승을 또 얻어낸 것이다. 특히 38세에 맞은 1998시즌은 18승(6패)을 거둬 다승왕에 올랐다. 1999년 마무리로 다시 돌아가 26세이브를 성공시킨 김용수는 2000시즌을 끝으로 통산 613경기에 등판해 126승(89패) 227세이브 방어율 2.98의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현역 시절 백넘버 41번은 LG 사상 최초로 영구결번이 됐다.
우승한 1994년을 전후한 1990년대 중후반은 LG ‘신인류의 시대’였다. 그 시절 LG 주전선수는 전원이 스타였고, 레전드로 기억된다. 루키 3인방 유지현 서용빈 김재현을 필두로 김동수 한대화 박종호 송구홍 등 야수들, 이상훈 정삼흠 김태원 등의 투수진이 그 시대의 주역이었다.
특히 야생마 좌완투수 이상훈은 LG 야구의 아이콘처럼 기억된다. 고려대 재학 시절 14연속타자 탈삼진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고 LG에 입단한 이상훈은 1994년 18승(다승 1위)을 거두며 LG의 우승에 에이스 노릇을 해줬다. 이어 1995시즌에는 20승을 달성했다. 1996년 마무리로 전환한 뒤 1997년 37세이브로 1위에 올라 또 한번 정상을 정복했다.
1998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 입단한 뒤, 선동열, 이종범과 함께 1999년 센트럴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그러나 1999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돌연 선언, 보스턴에 입단했고 방랑을 거듭하다 2002년 LG로 돌아왔다. 2004시즌을 앞두고 SK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6월 잔여연봉(약 3억원)을 포기하고 은퇴를 선언해 야구계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은튀 후 록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다 2012년 12월 은사 김성근 감독의 권유로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LG는 1994년을 끝으로 KS 우승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2년 준우승 이후 지난 시즌에야 11년 만에 가을야구잔치에 초대 받았다. 오욕의 역사였지만 그래도 이병규, 박용택, 봉중근 등이 LG를 지켰다. 특히 이병규는 지난시즌 39살 나이로 타격왕에 올라 LG 레전드 자리를 예약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