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 “돈으로 도는 영화판, 작가 정신 짓누른다”

입력 2014-04-16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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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돌아온 스크린 거장 이장호 감독

19년만에 스무번째 영화 ‘시선’ 내놔
“투자 배급 중심 영화계 다양성 외면”


높낮이 없는 저음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직설은 날카로웠다.

이장호(69) 감독은 “작가의 자유로운 마음으로 연출하는 영화 환경이 이젠 어렵다”고 짚었고 “투자와 배급을 고려한 돈으로 움직이는 제작시스템이 결국 창작자의 정신을 짓누르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영화에서 돈의 힘은 ‘철저함’을 넘어 이제는 ‘철두철미’해졌다”고도 했다.

1974년 연출가로 데뷔하고 꼭 40년 만에 스무 번째 영화 ‘시선’을 내놓은 이 감독은 19년 만에 돌아온 ‘현장’에서 느끼는 요즘을 이렇게 풀어냈다. 1995년 ‘천재선언’을 끝으로 메가폰을 놓았던 그다. 사실 그의 표현대로라면 1986년 ‘이장호의 외인구단’ 이후 “30년 가까이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동안 연출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영화계)분위기는 알 수 있다. 내가 느끼는 문제를 다른 감독들도 똑같이 느낄 것이다. 정신을 짓누르는 여러 것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을 거다. 더 쉽게 말해, 돈 때문에 양심 팔고 살지 않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도 돌이켰다.

“비록 우리가 보낸 옛날은 가난하고 나쁜 환경이었다. 그래도 감독으로서, 창작자로서 할 말은 했다. 지금은 욕하고 싶고 화가 나도 못하지 않나.(웃음)”

이장호 감독은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29세 때 찍은 데뷔작 ‘별들의 고향’은 당대 최고 흥행기록(46만)을 세웠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이 발표한 ‘한국영화 100선’ 가운데 ‘별들의 고향’을 포함해 ‘바람불어 좋은 날’(1980년), ‘바보선언’(1983년) 등 그의 작품 3편이 톱10에 들었다.

이장호 감독은 대학(전주대) 강단에도 섰고 지금은 서울영상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간간히 영화 연출을 시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한 ‘시선’은 각별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감독으로서 또 다른 꿈도 꾸고 있다.

‘시선’이 자신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되길 바란다는 그는 어쩔 수 없이 최근 영화계가 겪는 투자배급 중심의 제작 환경으로 말머리를 다시 돌렸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 제작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시선’ 같은 영화도 있구나…, 그런 흐름과 맥이 계속되길 바란다. 꾸준히 제작된다면 분명 관객이 든다. 상업적인 성공까지 한다면 그거야말로 다양한 영화가 살아남는 열매가 맺히는 출발 아닐까.”

‘시선’은 한 이슬람국가를 찾은 8명의 한국인과 탐욕스러운 선교사가 반군에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종교를 떠나 신을 향한 인간의 믿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묵직한 울림도 있다.

이 감독은 ‘시선’을 만들기까지 3년간 소송을 겪었다. 이야기를 구상한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진행한 마스터영화 제작 지원을 신청했으나 부당한 여러 압력으로 탈락됐다.

“그때 심사위원들은 ‘감독이 고령이어서 제작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모욕적인 설명을 내놨다.”

재판은 고등법원까지 갔지만 재판부는 결국 이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누군가는 그를 두고 ‘고령이어서’라고 말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그는 ‘시선’ 이후 만들 다른 작품까지 구상하고 있다. ‘96.5’라는 제목의 차기작은 “베트남 보트 피플을 구한 선장의 이야기”다. 그는 “‘시선’보다 돈이 많이 드는 영화”라며 웃었다.

“나는 늘 필름에 쫓기던 사람이다. 필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돌아보니 모두 디지털로 바뀌었다. 이젠 필름값 생각해 빨리 ‘컷’ 외치지 않아도 된다. 옛날 현장에 마치 지옥 같았다면 지금은 천국이다. 하하!”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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