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바구니에 담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영화 ‘역린’의 아쉬움

입력 2014-04-22 18: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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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22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제작 초이스컷픽처스)은 기대보다 실망이 컸다. 워낙 기대가 컸는지 영화관을 나설 때까지 아쉬움이 함께했다.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 드라마에서 흥행입지를 굳힌 이재규 감독의 첫 영화이자 제대 후 복귀한 배우 현빈의 출연만으로도 화제가 된 작품. 여기에 연기파 배우 정재영, 조정석, 박성웅, 김성령, 조재현, 정은채, 한지민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까지 참여해 2014년 최고의 기대작이었다. 제작 단계부터 영화팬들은 물론이고 영화관계자들에게까지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펼치고 보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역린’은 정조 즉위 1년인 1777년 7월 28일 밤, 정조의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에 자객이 침투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벌한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해 28일 하루 동안 정조를 암살하려는 역모를 꾀하는 자들과, 그들에게서 목숨을 지키고자 한 정조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조(현빈)는 늘 암살 위협에 쫓겨 밤낮으로 독서와 운동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닦는다. 노론과 소론의 당쟁 속에서도 그는 중용 제23장 ‘기차치곡’(其次致曲)을 언급하며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면 변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 사이 궁 안팎에서는 정조를 죽일 만반의 준비를 한다. 살수를 부르고 군 세력을 모아 28일 밤 작전을 실행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이야기의 초반부는 완벽히 몰입하기 어렵다. 배우들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주요인물이 많아지면서 다룰 이야기가 많아져 극의 중심으로 다뤄져야 할 정조의 고뇌와 왕권의 강건함이 상대적으로 가려진다. 비밀 살막에서 키워진 살수들의 이야기 등 인물들의 과거 회상 장면도 조금은 과한 듯하다. 지나친 편집도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데 방해된다.

하지만 극의 클라이막스인 정조와 살수인 을수(조정석)의 빗속 액션은 정교한 영상미가 돋보였다. 비가 내리는 존현각에서 살수들과 군사들, 그리고 정조가 부딪히며 벌어지는 혈투는 스타일리시한 영상이 빛을 발한다. 지붕을 타고 오르는 자객들의 장면에서 궁 전체를 훑어 넓게 보여주는 장면과 초고속 카메라와 특수효과 레일을 이용한 촬영은 인물들의 갈등과 감정, 역동적인 액션을 한 프레임에 담아 스타일리시한 영상을 탄생시켰다.

배우들의 연기도 떼어놓고 보면 나쁘진 않다. 제대 후 3년 만에 복귀한 현빈은 온화한 품성과 강렬한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인물을 잘 표현했고 정조를 보필하는 상책 역을 맡은 정재영은 밀도 높은 감정신을 소화한다. 살수 역할을 하는 조정석 역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강렬함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다시 중용 제23장 ‘기차치곡’(其次致曲)이다. 실제로 왕권을 강화와 인재 육성, 신분 차별 철폐에 앞장서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개혁 군주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정조의 신념은 현대에 살아가며 변화를 꾀하는 우리에게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는 잔잔한 메시지를 준다. 초반에 나온 중용을 다시 언급해 극의 마지막을 메우려는 느낌은 들지만 나쁘지 않은 메시지다.

전체적으로, ‘역린’은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오랫동안 드라마 연출을 해온 이재규 감독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동시에, 러닝타임 135분 안에 16부작 드라마를 담으려는 듯한 단점도 보였다. 좋은 계란도 한 바구니에 담으면 깨지듯 절제의 미학도 필요할 듯. 4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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