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워싱턴 제이슨 워스 “야구 DNA가 날 그라운드로 이끌어”

입력 2014-06-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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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워스. 동아닷컴DB

[동아닷컴]

“추신수(32·텍사스)는 제이슨 워스(35·워싱턴) 보다 더 받아야 된다.”

추신수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지난해 11월에 한 말이다. 그리고 한 달 뒤 추신수는 텍사스와 6년간 총액 1억3000만 달러(약 1379억 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보라스의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추신수의 계약에 있어 비교대상이었던 워스는 2010년 12월 워싱턴과 7년 총액 1억2600만 달러(약 1282억 원)에 계약했다. 당시 그의 계약은 빅리그 역대 총액기준 14번째에 해당하는 대형계약이었다.

미국 일리노이 주(州) 출신인 워스는 적어도 야구에 있어서 만큼은 우수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의 친아버지는 대학시절 야구와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며 대학미식축구 1부 리그에서 각종 리시빙(Receiving)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을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1978년 야구선수로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했지만 부상 때문에 빅리그 진출은 하지 못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워스의 친할아버지 더키 스코필드와 삼촌 딕 스코필드는 과거 메이저리그 내야수였고 그의 양아버지 데니스 워스 또한 뉴욕 양키스에서 4시즌을 뛴 빅리거 였다. 특히 워스를 비롯해 그의 삼촌과 할아버지 모두 LA 다저스에서 뛴 경험이 있고 워스와 그의 할아버지는 월드시리즈 우승 경력도 있다.

이런 뛰어난 배경 때문이었을까? 워스는 유소년 시절부터 야구선수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고 3때는 시즌 총 31경기에 출전해 타율 0.652 15홈런을 기록했다. 당시 워스는 조지아 대학에 진학하려 했지만 1997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22번)에서 볼티모어에 지명되자 프로를 선택했다.

워스는 상위 지명자였지만 2002년이 돼서야 빅리그에 올랐다. 그 것도 볼티모어에서 토론토로 트레이드 되는 아픔을 겪은 후였다. 토론토에서 2시즌을 보낸 워스는 2004년 3월 다저스로 트레이드 됐다.

다저스로 이적한 워스는 2005년 시범경기에서 당시 플로리다(현 마이애미) 투수였던 A.J. 버넷의 공에 맞아 왼쪽 팔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워스는 그 해 총 102경기에 출전하며 부상의 악몽을 털어내는 듯 했으나 2006년 팔목 부상이 재발해 시즌을 통째로 날려야만 했다.

시즌이 끝난 뒤 다저스에서 방출된 워스는 필라델피아와 1년 계약했다. 이 때만 해도 워스는 다저스가 포기한 그저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2008년 시즌이 시작되자 그랜드슬램을 포함, 한 경기 3홈런을 때려내는 등 공수양면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필라델피아는 이런 워스의 활약에 힘입어 그 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제이슨 워스. 동아닷컴DB


워스는 2년 뒤인 2010년 12월 워싱턴과 7년 총액 1억2600만 달러의 FA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그는 이적 첫 해였던 2011 시즌에 FA 징크스를 겪으며 타율 0.232 20홈런 58타점으로 저조했다. 2012년 5월에는 친정팀 필라델피아와의 경기 중 다이빙캐치를 하다 왼쪽 팔목이 부러져 3개월간 전력에서 이탈해야 하는 불운도 겪었다.

부상에서 회복한 워스는 지난해 8월 자신의 빅리그 통산 1천 안타 기록을 달성하는 등 타율 0.318 25홈런 82타점으로 부활했다. 2008년부터 4년 연속 기록했던 두 자릿수 홈런(24-36-27-20개) 기록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워스의 메이저리그 12년 통산 기록은 5일 현재 타율 0.274 175홈런 601타점 출루율 0.366 장타율 0.467.

동아닷컴은 최근 국내 언론 최초로 미국 현지에서 워스를 만나 인터뷰했다. 덥수룩한 수염 탓에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첫 인상의 소유자였지만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등 인간미 또한 넉넉한 선수였다.

다음은 워스와의 일문일답.

-만나서 반갑다. 최근 몸 상태는 어떤가?

“(웃으며) 나쁘지 않다. 이제 겨우 5월 중순이고 162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이 끝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현재 몸 상태나 컨디션 모두 좋다.”

-올 시즌 특별한 목표가 있나?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우승하는 게 목표다.”

-그 것뿐인가?

“그렇다.”

-너무 간단하다. 개인적인 목표도 있을 것 같다.

“(웃으며) 물론 없지 않다. 하지만 먼저 팀 승리에 중점을 두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정도가 되면 좋은 개인성적은 자연히 따라 오리라고 본다.”

-공감한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 중 한 명이다. 성공 비결을 꼽자면?

“우선 남보다 야구를 오래하고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항상 야구를 즐기려고 했던 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야구장에 오면 늘 동료들과 함께 즐기면서 야구를 하려고 한다.”

제이슨 워스. 동아닷컴DB


-어려서 야구를 시작한 걸로 안다. 가장 좋아했던 팀과 롤모델은?

“내가 야구를 처음 시작한 게 아마 3~4세였던 것 같다. 당시 삼촌이 빅리그 선수로 LA 에인절스 소속이었다. 참, 당시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였다. 게다가 할아버지 역시 과거 빅리그 선수여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남보다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접하고 시작할 수 있었다. 삼촌 때문에 당시에는 에인절스 경기를 가장 즐겨봤고 롤모델 역시 삼촌과 할아버지였다. 그들을 보면서 나 또한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야구선수 외에 다른 장래희망은 없었나?

“(웃으며) 물론 없지 않았다. 성장기에 나 또한 농구를 했고 특히 지금은 은퇴한 마이클 조던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들어서 알겠지만 나의 태생이나 유전적인 배경이 아무래도 야구 쪽인 것 같아서 야구를 선택했다.”

-야구를 시작하고 가장 행복했던 때를 꼽자면?

“행복했던 순간이 너무 많다.”

-다수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빅리그로 콜업되었을 때를 꼽던데.

“나 역시 빅리그로 콜업됐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해보니 지난 2008년 필라델피아에서 월드시리즈를 제패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웃으며) 그 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고 싶다.”

-빅리그 투수 중 본인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선수는 누구인가?

“애니발 산체스(디트로이트)를 꼽고 싶다. 물론 나 역시 그를 상대로 홈런을 1개 치긴 했지만 (웃으며) 대부분은 삼진으로 물러났을 만큼 유독 산체스만 만나면 힘을 못 쓴다. 그 외에도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가 여럿 있지만 산체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연습이나 경기가 없는 날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웃으며) 쉬는 날은 쉬라고 있는 날 아닌가. 그래서 난 쉬는 날만큼은 밀린 잠을 자는 등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그냥 푹 쉰다.”

-워스도 별명이 있는지 궁금하다.

“야구를 시작한 후부터 줄곧 동료들이 제이덥(J dub)이라고 부른다. 특별한 뜻은 없다.”

제이슨 워스. 동아닷컴DB


-야구 선수들은 징크스가 많다. 당신도 그런가?

“(웃으며) 그렇다. 하지만 징크스가 항상 바뀐다. 내가 안타나 홈런을 치거나 팀이 승리했을 때 한 날의 행동을 다음 경기 때도 똑같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성적이 안 좋으면 다른 걸 시도한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미신을 믿는 편이라 이런 행동은 은퇴할 때까지 계속할 것 같다. 하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로서 당신 외에 3명의 최고 외야수를 꼽는다면?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를 모두 합쳐서 말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우선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을 꼽고 싶다. 물론 아직 나이가 어리고 메이저리그 경력도 짧아 속단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야구를 향한 그의 집념이나 열정 등 트라웃의 플레이를 매우 좋아한다.

다음은 토리 헌터(LA 에인절스)다. 지금은 나이가 있어 예전 같지 않지만 전성기 때의 그는 정말 최고였다.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캔자스시티의 알렉스 고든은 어떤가?

“그도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최고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아, 누가 있더라? (잠시 생각하다) 아, 카를로스 벨트란(뉴욕 양키스)를 꼽고 싶다. 양대 리그를 합쳐 마이크 트라웃과 토리 헌터 그리고 카를로스 벨트란을 최고의 외야수 3인으로 꼽고 싶다.”

-워스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

“(단호하게) 야구는 내 인생이다.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의 시간들 중 야구를 제외하면 별로 남는 게 없을 만큼 야구는 내게 부여하는 의미나 비중이 매우 크다. 돌이켜보면 남보다 일찍 야구를 시작했고 게다가 정말 열심히 했다. 중간에는 팔목 부상을 당해 한 때 선수생명이 끝날 것 같은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겨냈고 ‘야구’는 고맙게도 내가 흘린 땀에 대한 보상도 충분히 해줬다. 정말이지 야구를 사랑하고 존중한다. 이제 나이가 있어 얼마나 더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모르겠지만 유니폼을 벗게 되는 날이 오면 정말 슬플 것 같다.”

-팬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웃으며) 하지만 적어도 향후 수년 간은 아직 자신 있다. 은퇴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야구를 즐기고 싶다. 그래야 은퇴하고 나서 후회가 덜 할 것이다.”

-끝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나를 포함해 워싱턴을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그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항상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애리조나=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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