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간다’에서 조진웅은 한 순간의 실수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형사 고건수(이선균)를 유일하게 목격한 정체불명의 인물인 박창민 역을 맡았다. 뱀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하얀 얼굴과 검은 버버리 재킷, 엄청난 괴력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간담서린 모습으로 흡입력 있는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박창민을 설명하는 장면들은 다 빠진 것 같아요. 몇 장면 안 나왔는데 술은 왜 이렇게 많이 마셨지? 하하. 처음부터 분량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아 그런데 너~~무 없더라고요. 대본 리딩 첫 날 정말 힘들었어요. 배우들과 다 같이 있는데 전 한참 뒤에나 나오더라고요. 한참을 기다려도 제 순서는 안 오더군요. 이렇게 조금 나올 줄은 몰랐지만 초반에 제 목소리가 많이 들리니까 많이 등장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게 영화가 만들어졌더라고요.”
이어 “제가 보기엔 악역도 아닌 것 같고 그냥 고건수의 상대축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무슨 인물일까,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계속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박창민은 UDT 출신이고 잘 만들어진 살인 병기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고건수를 계속 쪼이지만 결코 후진 방법으로 처리를 하진 않죠. 뻔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싶었어요. 고민의 결과들이 의도한 대로 깔끔하게 잘 나와서 다행이다”라고 덧붙였다.
박창민은 고건수가 뺑소니 사고를 일으키고 이를 숨겨두려 하자 전화로 그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고건수 씨, 사람 죽이고도 지낼만 해요?”라는 그의 첫 대사는 고건수의 숨통을 쥐어오고 관객들의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카리스마 있다. 목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는 “스트레스였다. 나도 어디 가서 목소리 좋다는 소리 듣는 사람인데 상대가 이선균 형이었다. 하하. 목소리로 여심을 사로잡은 사람 앞에서 목소리 연기를 하려니 압박 아닌 압박을 받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일전 이선균은 인터뷰에서 “조진웅이 연기를 정말 잘해서 그와 연기가 비교될까 두려웠다”고 말한 바 있었다. 이를 말하니 그는 “에이, 그 형은 앓는 소리가 심해”라며 웃더니 “선균 형은 ‘아 그거 할 수 있을까?’하며 앓는 소리를 해도 현장가면 알아서 잘 한다. 아마 동생 힘내라고 그런 칭찬도 인터뷰에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끝까지 간다’에서 조진웅과 이선균의 호흡은 가히 환상적이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비정상적이게 침착한 박창민과 그런 그의 협박의 불안함과 혼란에 휩싸이는 건수의 쫓고 쫓기는 머리싸움은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두 남자의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치밀한 밀고 당기기와 서로 몸이 뒤엉키는 과감한 액션은 영화 제목 그대로 끝까지 간다. 하지만 이런 작품이 나오기까지는 감독과 두 연기자의 두뇌싸움이 있었다. 이들은 늘 현장에서 고민했다. 서로 장면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러기에 장면을 찍고 나서 서로 모니터를 하고 ‘재미없는 것 같은데’라며 머리를 감싸 쥐기도 했다. 그래서 또 찍고 찍었다. 마음에 들 때까지. 정말 집요한 배우였다.
“작업이 안 풀리면 돌아버리는 스타일이죠. 우리에겐 다음이란 없으니까. 다시 한 번 더 찍을 순 있지만 감정은 똑같지 않거든요. 전작 ‘마이 뉴 파트너’의 김종현 감독님과 촬영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지금 네가 찍고 있는 이 장면은 평생 다시 못 찍을 수 있다고. 그 때부터 장면 하나하나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몇 테이크 더 갈 순 있겠죠. 하지만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어요. 연극도 매회 연기가 다르지만 관객들은 그 순간을 기억하잖아요. 영원히 그 모습으로 기억할 테니까요. 당연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원래 뭔가에 의미를 두는 것을 안 좋아하지만 좋은 가치를 알게 됐어요.”
의미를 두지 않는다니 의아했다. 그는 “어차피 지나갈 것들이다. 내가 찍은 영화 DVD도 갖고 있지 않다”며 자신의 연기적 가치관을 털어놨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중요하다고 하죠? 캐릭터를 버리는 작업도 깨끗해야 돼요. 잔상들 때문에 휘둘리는 경우도 많거든요. 버리는 게 쉽지 않은 경우도 생겨요. 고민을 많이 했다거나 특별히 애정이 있었던 캐릭터는 잘 나가질 않죠. 고스란히 제 어딘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참 재미있었던 게 영화 ‘범죄와의 전쟁’, ‘퍼펙트 게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비슷한 시기에 촬영을 한 적이 있어요. 매니저가 그러던데 ‘범죄와의 전쟁’ 촬영장에 갈 때는 제가 건달처럼 거들먹거리고 ‘뿌리 깊은 나무’ 촬영장 갈 때는 말투도 조선시대 말투를 쓴다고 하네요.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캐릭터를 입게 되나 봐요.”
충무로는 앞으로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다. 올 여름 개봉할 ‘군도 : 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 ‘명량, 회오리 바다’(감독 김한민), 최근 촬영을 마친 ‘우리는 형제입니다’(감독 장진), 그리고 곧 촬영에 들어갈 ‘허삼관 매혈기’(감독 하정우)까지 그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최근 크랭크업한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찍었고 이제 ‘허삼관 매혈기’에 들어갑니다. 개인적으로 장진 감독님 팬이거든요. (김)성균이와의 호흡도 재미있었고요. 개인적으로 성균이가 ‘응사’(응답하라 1994)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아서 좋아요. 성균이가 고민을 많이 했던 작품이거든요. 근데 제가 강력 추천했죠. 무조건 하라고 했어요. 저 ‘응답하라’ 시리즈 팬이거든요. 하하. ‘응사’ 본방사수 했었는데 성균이가 그중에서 가장 웃기던데요? 좋은 배우가 사랑 받으니 기분이 좋죠. 하정우가 메가폰을 잡은 ‘롤러코스터’도 참여하려고 했는데 스케줄이 안 돼서 못 했어요. 정말 미안해서 이번에 ‘허삼관 매혈기’로 그를 적극 도와줄 겁니다. 마을 아저씨 역할이에요.(웃음).”
마지막으로, 최근 ‘품절남’이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에게 은근슬쩍 자녀계획을 물어봤다. 그는 호탕하게 “아들 딸 구별 없이 낳는 대로 키울 것”이라 답했다. 김성균, 이선균, 장현성 등 주변 동료배우들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빠가 되고픈 마음이 커진다고 말했다.
“장현성 선배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하잖아요. 형님과 아들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아빠가 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아들 낳는데 커서 속 썩이면 어쩌죠? 딸은 아까워서 시집도 못 보낼 것 같아요. 하하.”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