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영. 동아일보DB
2014브라질월드컵에 출전 중인 태극전사들은 23명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출전 기회를 잡는 것은 아닙니다. 선발 출전 11명과 최대 교체 인원 3명을 합치면 영광의 월드컵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는 선수는 경기당 14명에 불과하죠. 더욱이 3∼4일 간격으로 거듭해서 운명의 일전을 치러야 하는 까닭에 새로운 얼굴을 투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주전은 일찌감치 정해지고, 교체 카드의 주인공도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경고누적과 퇴장 등으로 인한 출전정지 징계나 불의의 부상 등이 없다면 나머지 벤치를 지키는 9명에게는 아예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그나마 필드플레이어들은 낫습니다. 필드플레이어의 경우 대개 포지션별로 2명씩을 뽑는 데 반해 골키퍼(GK)는 3명입니다. 넘버 원과 넘버 투가 주전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3번째 GK 옵션은 월드컵 분위기를 느끼는 데 만족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만에 하나를’ 위해 선택된다는 거죠.
한국축구가 4강 신화를 일궜던 2002한일월드컵 당시 이운재(은퇴)-김병지(전남)에 이어 넘버 쓰리 GK로 벤치를 지킨 최은성(전북)은 당시 이런 말을 남겼다죠? “내가 뛰게 되려면 동료 2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출전하지 못해야 해요. 그게 부상이 될 수도 있고, 카드 문제가 될 수도 있죠. 상상하기도 싫어요. 그저 난 분위기를 띄워주고, 동료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우면 됩니다.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가 돼 주는 거죠.”
지금 ‘홍명보호’에도 그런 선수가 있습니다. 이범영(25·부산·사진)입니다. 지난해 7월 홍명보호의 공식 출범 이후 꾸준히 대표팀에 선발됐지만, 공식 기록은 ‘A매치 0회’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는 정성룡(수원)-김승규(울산)에 이은 3번째 GK일 뿐입니다. 엄청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브라질에선 보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범형은 단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습니다. 3명의 GK들 가운데 가장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는 이도 그입니다. 대표팀 김봉수 GK코치의 혹독한 훈련에 체중이 줄었어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연습, 또 연습을 합니다.
물론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이범영이 홍명보호가 꿈꾸는 역사의 중심에 설 수도 있겠죠. 2년 전 런던올림픽 4강 길목에서 마주친 영국과의 대결. 어깨를 다친 정성룡 대신 투입돼 승부차기에서 환하게 웃었던 그의 경험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입니다. 김 코치는 월드컵 도전을 앞두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했습니다. “혹시 압니까? 16강, 더 나아가 8강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승부차기를 펼칠지…. 그 감동의 드라마 한 편을 쓰기 위해 우리 애들은 오늘도, 내일도 뛰고 또 뜁니다.”
이범영은 승부차기를 ‘GK들의 축제’라고 표현했습니다. 부담스러운 쪽은 자신이 아닌, 상대 키커라는 것이죠. 나름의 노하우도 있습니다. 부디, 그 신명나는 축제가 펼쳐지길 기대한다면 지나친 일일까요?
포르투 알레그리(브라질)|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