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워킹걸’ 조여정 “데뷔 18년, 아직 결혼보다 일이 우선”

입력 2015-01-19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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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여정. 동아닷컴DB

배우 조여정(33)이 콧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는 “‘워킹걸’은 지금까지 한 작품 중 가장 힘든 작품이었다”고 고백했다. 불평보다는 앙큼한 투정에 가까웠다.

조여정은 해고 당한 커리어우먼 보희와 폐업 일보 직전의 성인샵 CEO 난희의 동업을 그린 섹시 코미디 영화 ‘워킹걸’에서 보희를 연기했다. 액션 영화도 아닌데 어떤 점이 힘들었을까.

“거의 모든 신에 제가 나오는데 촬영 스케줄이 되게 타이트했어요. 에너지를 많이 쓰니까 힘들더라고요.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봐 스스로와 싸웠어요.”

사실 이 영화는 아주 자극적인 요소로 포장돼 있다. 섹시 아이콘 조여정과 클라라가 만나 성인용품을 판다는 설정부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섹시한 여성이 주인공인 탓에 노출에만 초점이 맞춰질 우려도 있었다. 특히 조여정은 ‘방자전’ ‘후궁:제왕의 첩’ 그리고 ‘인간중독’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수위 높은 신을 소화한 바 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노출 장면들이 영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담없이 촬영했어요. 작품과 어울릴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노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데뷔 첫 노출신도 담담하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한번 했다고 해서 다음부터 편한 것도 아니고요.”

노출 장면이 적지 않았음에도 조여정은 온전히 정범식 감독을 믿고 ‘워킹걸’을 택했다. 그는 “정 감독의 전작 ‘기담’이 좋아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역시 정 감독은 영화에 남다르게 접근하더라”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서 푸는 감독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또 “겉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진 두 여자의 성공 스토리인데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라는 것이 베이스로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조여정의 말대로 영화는 변주를 통해 ‘성인용품’과 ‘가족’을 엮어 그린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재가 결국 하나로 어우러지는 재미가 있다.

배우 조여정. 동아닷컴DB


조여정은 종종 스스로를 보희에 투영해 표현했다. 그는 “보희처럼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일하는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그의 애환에 많이 공감했다. 그래서 연기하기가 편했다”고 밝혔다.

“보희처럼 저도 선입견을 동반한 직업을 가졌어요. 배우뿐 아니라 모든 직업에는 선입견이 있지만 다들 맞서거나 뒤집지 않잖아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일을 해나가죠. 그런 점에서 저도 보희에게 공감했어요.”

그러면서 조여정은 보희가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장면을 언급했다. 그는 이 장면에 빗대어 과거 겪었던 슬럼프를 고백했다.

“연기를 시작하고 제일 무서웠던 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어요. 제가 알아서 찾아서 하는 만큼 되거나 잘 안 되고 결과물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죠. 각성이 되더라고요. 실행부터 완료까지 혼자 다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었죠.”

조여정은 기다림과 인내로 그 시기를 이겨냈다. 그는 “뭐라도 찾아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로 채워나갔다”며 “그때는 솔직히 어떤 말도 도움이 안 되더라. 아플 때는 아파야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조여정은 순간 잠시 울컥한 듯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내가 조언한다고 해서 다 메워질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본인이 채워야 하는 것”이라고 솔직한 면모를 보였다.

또한 조여정은 “현장은 전쟁터와 같다. 일을 하면서도 종종 한계에 부딪힌다”라고 말했다. 그의 극복 노하우는 거창한 것이 아닌 소소한 농담. 조여정은 “화가 나더라도 코믹하게 승화해서 얘기하면 웃게 된다. 그렇게 웃다 보면 어느 정도 풀리더라”며 “이번 영화도 작업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동시에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극 중 과장에서 쫓겨난 후 성인용품사의 대표이사로 거듭나는 조여정. 그에게 “직급으로 볼 때 배우로서 어느 수준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1997년부터 18년 동안 꾸준히 일했으니 일반 회사원의 경우 평균적으로 부장에 해당한다.

“인턴부터 사장까지 모든 직업에 다 해당된다고 봐요. 말하자면 프리랜서? 회사의 도움을 받지만 제 연기는 저만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감시자가 없고 혼자 독립적으로 하죠.”

조여정에게서 보희와 같이 워커홀릭의 모습이 묻어났다. 그는 “배우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직업이다. 배우를 안 했으면 다른 사람과 발을 못 맞췄을 것”이라며 “성격이 굉장히 급한 편이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변했다. 연기를 할수록 힐링이 되더라”고 말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듯이 제가 할 캐릭터도 매번 같을 수 없겠죠. 그게 정말 재밌는 거예요. ‘좋아하면 바보 된다’고 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제 인생도 결혼보다는 일을 할 때인 것 같아요. 사랑도 일도 미리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웃음)”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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