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기자의 고치 리포트]모건이 김성근 감독에게 자필편지를 쓴 사연

입력 2015-02-14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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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필체 하나는 좋더라고.”

뜬금없이 편지 얘기부터 꺼냈다. 한화 김성근(73) 감독은 새 외국인선수 나이저 모건(35) 얘기가 나오자 껄껄 웃으며 “그 친구, 여기서 한국으로 가기 전에 나한테 편지를 써서 주고 가더라”며 일화를 들려줬다.

모건은 일본 고치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2일, 김 감독의 지시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도 높은 고치 훈련을 소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충남 서산에 있는 2군 훈련장에서 이정훈 2군 감독의 지도 하에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김 감독은 내심 흐뭇했던 모양이다. 모건이 쓴 편지 얘기를 꺼내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난달 25일 고치 캠프에서 만나자마자 “외국인선수도 한국 선수들과 똑같이 대하겠다. 예외는 없다”는 뜻을 전달한 뒤 취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행여 마음을 다칠 수도 있고 반발을 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상황. 외국인선수이기에 더 그렇다.

그러나 기우였다. 편지를, 그것도 자필로 써서 감독인 자신에게 직접 전달한 뒤 한국으로 날아갔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며 분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모건이 ‘팀에 피해를 끼쳐 미안하게 됐다’면서 장황하게 편지를 써서 주더라. 그런데 깜짝 놀랐다. 영어로 편지를 썼는데, 필체가 아주 좋더라. 필체만 보면 심성이 아주 고운 친구 같더라”며 웃더니 “그렇지만 필체만 좋으면 뭐하냐. 필체만큼 야구도 잘 해야지”라며 혀를 ‘쯧쯧’ 찼다.

공과 사를 얼음처럼 냉정하게 구분하는 김 감독의 마음을 편지 하나로 돌릴 수 없는 없는 법. 김 감독은 “편지 내용을 보니 본인은 스스로 나름대로 훈련을 하고 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땐 전혀 아니었다. 미국과 여기 시차가 있다고 해도, 딱 보면 안다. 여기서 도저히 훈련을 따라올 몸이 아니었다. 완전히 놀다 온 것 같았다. 그동안 나도 감독 생활하면서 수많은 용병들을 만났지만 지금까지 이 정도로 훈련 안 한 몸으로 스프링캠프에 온 용병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성근 감독을 포함한 한화 1군선수들은 15일 오키나와로 떠나고, 2군선수들이 그날 고치로 들어와 이곳에서 연습경기와 훈련을 할 예정이다.

이번에 모건은 이정훈 2군 감독과 함께 고치로 들어오게 된다. 매일 이정훈 감독이 전화로 김 감독에게 모건의 몸상태와 훈련내용 등을 보고해 왔는데, 현재 수비와 주루플레이는 많이 좋아진 상태. 예컨대 김 감독이 전화로 서산에 있는 이 감독에게 “몸쪽 변화구를 던져보라”며 직접 지시를 하면, 이 감독이 이에 따라 컨디션을 체크하고 김 감독에게 보고를 했다. 한마디로 김 감독이 원격조정을 한 셈이었다.

김 감독은 뭔가가 생각난 듯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정 안 되면 고치에도 못 오게 하고 서산에서 계속 몸 만들도록 하려고 했는데 이정훈 감독이 모건이 고치에 올 정도는 됐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얘기를 하던 도중이었다.

“이정훈 감독이 전화로 말이야. ‘감독님, 모건이 이제 변화구도 잘 칩니다. 제가 변화구를 이것저것 던졌는데 다 받아칩니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니가 던지는 변화구가 변화구냐. 그 정도 변화구 못 치면 타자냐’라고. 그랬더니 ‘아닙니다. 제가 변화구는 잘 던집니다. 제 변화구 죽입니다’라며 큰소리를 치더라고. 그래서 알아서 하라고 했지. 허허.”

그렇다면 모건은 고치에서 조만간 오키나와로도 넘어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 감독은 “그건 알 수 없지. 여기서 컨디션이 올라오면 오키나와로 부를 것이고, 아니면 여기 계속 훈련하게 남겨둬야지”라며 다시 한번 냉정하게 말했다. 다른 잣대는 없다. 편지도 소용없다. 오로지 몸상태와 컨디션만 보고 판단할 뿐이라는 뜻이었다.

고치(일본)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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