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기자의 오키나와 리포트] ‘땜빵 인생’ 송신영 “마운드 설 때가 행복”

입력 2015-03-03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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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앞둔 넥센 베테랑 오른손투수 송신영은 이제 불과 며칠, 그리고 몇 달을 내다볼 수 없는 하루살이 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기운이 넘친다. 그는 마지막 목표인 현역 통산 700경기 출전에 25경기를 남겨두고 있지만 “더는 아니라고 생각할 때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며 소박한 은퇴식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현대 때부터 선발·불펜·마무리 제몫 톡톡
올해 5선발·롱릴리프 염두 기초체력 다져
염경엽 감독 “열심히 던지면 윤성환” 격려
700경기 출전과 소박한 은퇴식 마지막 꿈

“(최)영필이형, (손)민한이형 공 던지는 모습 보면 짠해요.”

넥센의 베테랑 오른손투수 송신영(38)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젠 현역마무리를 놓고 불과 며칠, 그리고 몇 달을 내다 볼 수 없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보내며 깊은 회한에 빠져들었다. 한국 나이로 불혹을 앞두고 있지만 1976년생과 학교를 같이 다녔다. 삼성의 이승엽, 임창용(이상 삼성), 홍성흔(두산), 박정진(한화) 정도만이 옛 일을 추억할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소중한 친구들이다. 꿋꿋이 자기 공을 던지고 있는 최영필(41·KIA) 손민한(40·NC) 같은 2년 선배들을 보며 숙연함과 동시에 용기를 얻는다.


● 현역 마지막 목표 700경기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1차 스프링캠프 초반 고열과 감기몸살을 앓으며 살이 쏙 빠졌다. 공을 던지고 난 뒤 회복도 예전만 못하다. 타고난 몸을 갖고 있지만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송신영도 “솔직히 예전만 못하다. 힘들다”고 했다.

그를 지탱하는 힘은 700경기 출전이라는 ‘마지막 목표’다. 목표로 삼았던 기록들을 하나, 둘 달성했다. 2013년 8월 9일 목동 SK전에서 우완 정통파 불펜투수로 김용수(전 LG)가 갖고 있던 613경기를 뛰어넘었고, 그해 10월 5일 대전 한화전에서 1000이닝을 소화한 역대 67번째 투수가 됐다. 그리고 마지막 목표인 700경기 출전에 25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좋은 구위로 1군을 버텨낼 수 있다면 25경기는 어렵지 않다. 하물며 경기수도 작년 128경기에서 16경기 늘어난 144경기 체제로 자리 잡았다.

염경엽 감독도 희망을 불어넣었다. 염 감독은 애리조나 캠프에서 “(송)신영이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던지면 윤성환(삼성) 만큼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송신영은 “감독님께서 나이 먹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해주신 말씀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웃었다.

겨우내 몸만들기에 집중했다. “적은 개수로 자주 던지던 이전 불펜피칭과 달리 70∼80개 이상을 던지며 등판 간격을 조정했다”고 전했다. 제5선발은 물론이고, 롱 릴리프까지 소화할 만한 기초 체력을 다져놓았다. ‘투수왕조’ 현대가(家) 시절부터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인생에서 크게 달라질 것 없었다.


● 평균치를 벗지 못했던 ‘땜빵 인생’

송신영은 1999년 현대 입단 이후 17번째 시즌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삶을 요약했다. ‘땜빵 인생’이 바로 그것. 어릴 때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발투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이 2000년 각각 18승을 거둘 만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정명원, 위재영, 조웅천 같은 선배들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야구인생은 필사적이고 치열했다. 선발과 중간, 필승조를 거쳐 마무리까지 맡았다. 묵묵히 제 역할을 해냈고, 100점에 못 미치더라도 평균 이상은 받았다. 그는 “현대 때부터 그랬다. 신철인이 아프면 필승조도 하고, 손승락 대신 마무리도 했다. 그리고 선발도 했다. 항상 제 자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래서 많이 던지고 최선을 다하는 길 밖에는 없었다”고 했다. 칼날 같은 제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떠올리지만 딱히 정해진 보직은 없었다. 다만 송신영은 어디에 두어도 제몫은 해내는 선수가 돼 있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는 “확실하게 뭔가를 보여줬으면 선발투수나 마무리투수가 돼 있었을 것이다. 근데 뭔가가 하나씩 부족했다. 마무리로서 강속구가 없었고, 선발로 이닝관리나 체력이 떨어졌다. 특출 나지 못했기 때문에 시작된 땜빵 인생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새 시즌도 다르지 않다. 그는 “144경기를 하면 부침도 있을 테고 선수들이 과부하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을 조금씩 메워줄 수 있다면 성공적인 시즌이 되지 않을까”라고 웃었다.


● 베테랑,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마운드는 늘 두렵다. 작년 타자들에게 많이 맞아 나가면서 부쩍 자신감을 잃었다. 자연스레 타자와 수싸움에서 밀리고 말았다. 41경기에 나와 방어율 6.59로 데뷔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고참을 향한 시선도 이겨내야 할 부담이고 ‘적’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후배들의 시선을 감내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최선참이 어려운 게 책임감은 중한데 타자한테 맞으면 창피하고 위축된다. 그게 어려운 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얻었던 프로 첫 등판을 떠올린다. 2001년 4월 19일 수원 한화전에서 4회 선발투수 박장희를 구원등판해 경기를 혼자 마무리했다. 5.1이닝 동안 2안타 7삼진 1실점의 눈부신 데뷔전. 당시 최고의 타선을 갖춘 한화를 상대로 거둔 놀라운 투구였다. 그는 “1군 올라와서 12일 동안 몸 한번 못 풀어보고 2군에 가는 줄 알았다. 그때 김시진 투수코치님께서 ‘신발끈 묶어라’고 하셔서 절박과 긴장감을 갖고 있었기에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내다보며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마흔까지 야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웃으며 말한다. “지금까지 마운드에 설 수 있어서 행복하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 것 같다. 더는 아니라고 생각할 때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며 소박한 은퇴식을 하고 싶다.” 그는 떠날 때 뒷모습이 아름다운 그를 그리며 오늘도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angju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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