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S존 넓게 쓰는 손민한을 배워라

입력 2015-06-0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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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베테랑투수 손민한은 올 시즌 마운드에서 스트라이크존을 활용하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면서 젊은 투수들에게 살아있는 교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투수의 마운드 운영능력

불펜피칭과 실전 격차…운영능력이 좌우
베테랑 투수들의 마운드 운영 ‘좋은 교본’
NC 손민한, 결정구로 높은 볼…상식 파괴

이번 시즌을 앞두고 현장에 복귀한 넥센 손혁 코치는 스프링캠프에서 기대가 컸다. 젊고 힘이 넘치는 넥센 투수들의 피칭을 보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스프링캠프는 희망이 넘치는 시기다. 우리의 장점만 보인다. 프로 초창기 어느 팀은 스프링캠프 때 자기 팀 투수들의 예상 승수를 더해봤더니 무려 110승이 나왔다. 물론 시즌 뒤 계산은 달랐다.

손 코치에게 염경엽 감독은 “지금 우리 투수들을 어느 정도 믿느냐”고 물었다. 손 코치는 “70%”라고 했다. 염 감독은 “20%만 믿는다”고 했다.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경험 없는 선수들이 아무리 불펜에서 공을 씽씽 던져도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그만큼 던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 시즌 중에는 감독이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항상 최악을 상정해서 계산한다고 했다. 손 코치가 기대했던 70%와 염 감독이 본 20%의 차이가 바로 마운드에서의 경기운영 능력이다. 그만큼 불펜피칭 혹은 스프링캠프에서의 피칭은 실제 경기에서와는 차이가 크다.


● 경험 없는 투수는 마운드에서 제 정신이 아니다

스프링캠프의 희망이 사라졌던 손 코치의 실전 경험. NC와 경기 때였다. 박민우가 4구로 나가고 다음 타자가 김종호였다. 투수 B에게 초구 직구를 던지지 말라고 마운드에 올라가 지시했다. B는 “네”라는 대답을 3번이나 했다. 확실히 확인시켰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직구를 던져 안타. 발 빠른 주자가 나가있고 4구도 내줘 초구는 무조건 직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것이라고 상대 타자가 예상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경계하라고 알려줬는데도 그랬다.

다음날 B에게 “왜 그 상황에서 직구를 던졌느냐”고 물어봤다. B는 손 코치가 당시 무슨 말을 해줬는지는 물론이고 3번이나 대답을 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경험 없는 투수는 마운드에서 그만큼 제 정신이 아니다. 손 코치의 결론. “어린 투수에게 등판 직전에 조언을 몇 가지 해주는데 이 가운데 선수가 하나라도 마운드에서 기억을 하면 성공한 것이다. 내 말을 떠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마운드에서 침착하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기량을 발휘했다는 얘기다. 결국 투수는 실패하면서 요령을 배우는 방법 밖에는 없다.”


● 투수는 맞아야 하지만 맞을 기회는 드물다

투수는 맞아야 경험이 쌓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문제는 말과 실제의 차이다. 이유가 있다. 선발로테이션에 고정된 선수들은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이미 어떻게 타자를 상대해야 할지 요령을 안다. 1군 엔트리 커트라인에 걸린 투수들이 문제다. 이들에게는 연습경기 혹은 시범경기가 중요하다. 이때 타자와 대결해서 자신의 장단점을 알아야하지만 무조건 이기려고만 한다. 안타를 허용하면 2군으로 떨어진다는 두려움이 선수들에게 다음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길 수는 있지만 그때는 아직 타자가 정상이 아니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험은 쌓인다. 아쉽게도 경기운영 능력이 생길 때쯤 가지고 있던 공의 힘도 떨어진다. 요즘 NC 박명환의 피칭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전성기 시절 불같은 공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면서도 항상 운영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던 박명환은 요즘 다른 투수가 된 것 같다. 이제 정말로 타자와 싸움을 할 줄 안다. 그것도 모른 채 은퇴한 선수들에 비교한다면 박명환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직 충분한 기회도 있다.


● 어린 투수들이 먼저 배워야 할 베테랑들의 매니지먼트 능력

이번 시즌 유난히 베테랑 투수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예전 같으면 은퇴하고 사라졌을 선수들이 현역으로 뛰고 여전히 팀의 중심 선수로 큰 역할을 한다. 그만큼 선수들이 몸 관리를 잘하는 데다 선수의 부가가치가 높다는 증거다. 반대로 보자면 이들을 대신할 어린 선수들이 그만큼 성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베테랑 손민한(NC) 서재응(KIA) 송신영(넥센)의 피칭은 어린 투수들에게는 좋은 교본이다. 이들이 마운드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원포인트 레슨은 지도자들이 여러 번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

베테랑은 투수에게 중요한 것이 스피드가 아니라 타자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을 믿고 다양한 방법으로 타자의 정타를 피해가며 던지는 것이 스피드건에 나타나는 수치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안다. 이들은 스트라이크존 부근에 집중적으로 공을 던지고 최대한 실투를 줄인다. 주자상황에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잡아야 할 타자는 철저히 이긴다. 타자가 꼼짝하지 못할 완벽한 공보다는 스윙을 유도하는 공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도 안다.

투수는 지금 내가 마주친 타자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또 이 타자에게 어떤 공을 던지면 어떤 곳으로 타구가 간다는 믿음과 함께 그런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내가 100% 이긴다는 확신이 있는 타자가 대기타석에 있다면 지금 껄끄러운 타자와 상대할 이유가 없다. 베테랑은 내가 가진 힘으로 이길 수 있는 타자, 못이기는 타자를 잘 구분한다. 이길 수 있는 타자의 약점도 잘 파악하고 그 오차도 적다.


●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는 손민한의 피칭 노하우

NC투수들에게는 손민한이 완벽한 투수교본이다. 등판할 때마다 6∼7회를 던진다. 투구수를 줄여가며 오래 버티는 요령 가운데 하나는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만들고 이를 넓히기 때문이다. 룰에 나온 스트라이크존은 같지만 투수에 따라 다르다. 누구는 더 넓게 쓰고 누구는 좁게 쓴다. 당연히 넓게 쓰는 투수가 유리하다.

손민한은 공을 낮게 던져야 한다는 피칭정석과 다르게 던진다. 상식의 파괴다. 투수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공을 낮게 던져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야 타자의 장타를 피해갈 수 있다. 공의 힘을 희생시키더라도 낮게 던지려고 하지만 손민한은 아니다. 지난 시즌보다 길어진 스트라이크존을 잘 이용한다. 높은 쪽의 스트라이크존을 이용해 헛스윙과 범타를 잘 유도한다. 낮은 공보다는 높은 공에 힘이 있다. 손민한은 이 점을 알기에 때로는 위치보다는 공의 힘을 선택한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낮게 던지지만 위기에서 선택은 정반대다.

경험 없는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존의 아래 부분만 쓴다. 손민한은 전체를 쓴다. 높은 볼도 잘 이용한다. 이런 투수가 스트라이크존을 넓힌다. 상대하는 타자들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스트라이크존이 넓게 보여서 공격해야 할 포인트가 분산된다. 게다가 요즘은 떨어지는 공이 트렌드라 타자들도 낮게 떨어지는 공에만 공격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의외로 가슴팍에 오는 높은 스트라이크에는 약점이 드러난다. 생소하기 때문이다. 요즘 쉽게 타자를 이기지 못하는 투수라면 한번 자신의 스트라이크존을 점검해보라.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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