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판정의 순간까지 심판은 기다려야 한다

입력 2015-06-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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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의 재일동포 투수 장명부는 히든볼로 한국프로야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그는 함께 입단한 유격수 이영구와 함께 당시 걸음마 단계였던 한국프로야구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이로 인해 KBO는 이후 히든볼 금지 규정을 만들었다. 동아일보DB

포수의 태그·주자 홈터치로 안된 상황
주심 신호는 ‘주의환기 불가 규정’ 위반
83년 장명부·이영구의 히든볼 꼼수 때
심판이 경기 중단 ‘딴청’ 논란 소지 차단

4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KIA-두산전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KIA가 1-0으로 앞선 2회초 1사 1·3루 강한울 타석에서 헛스윙 삼진이 나오는 순간, 1루주자 이성우가 2루를 노렸다. 두산 포수 양의지가 2루로 송구했다. 그 순간 3루주자 김민우는 홈을 팠다. 일종의 딜레이드 더블 스틸. 송구를 잡은 2루수 양종민은 1루주자를 포기하고 다시 홈으로 공을 던졌다. 접전이었다. 양의지는 김민우를 태그하지 못했다. 김민우도 손과 발로 홈 터치를 시도했지만 지나쳤다. 주심은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포수와 주자가 주심을 바라보며 판정을 요구했다. 그때 주심은 손으로 태그되지 않았다는 신호를 줬다. 양의지는 그때서야 김민우를 태그했다. KIA 김기태 감독은 합의판정을 요청한 뒤 아웃 판정이 번복되지 않자 주심이 수신호를 준 것에 대해 항의했지만 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기는 진행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주심은 어떤 실수를 했을까.


● 어떤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을 경우 심판은 기다려야 한다!

도상훈 KBO 심판위원장은 “심판이 좀더 참고 기다렸으면 좋았다”고 말했다. 아직 포수의 태그도, 주자의 홈 터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심이 판정을 미룬 것은 옳았지만 선수들이 알아서 다른 액션을 할 때까지 “기다렸어야 맞다”고 설명했다. 베테랑 이규석 전 심판은 ‘주의환기’ 규정을 들었다. 심판은 선수들이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주의환기를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심판이 해야 할 행동은 두 팀 선수 누구에게도 상황과 관련한 말이나 행동, 관심을 보이지 말고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라면 주심이 뒤로 돌아서서 볼 보이에게 공을 달라고 한다든지 하면서 선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노련한 심판의 센스를 보여준 사건이 1983년 있었다. 삼미의 재일동포 콤비 장명부-이영구가 개입된 ‘실패한 히든볼’이었다. 상대 주자를 속이기 위해 유격수 이영구가 공을 숨기고 막 주자를 잡으려고 하던 때였다. 당시 2루를 보던 김광철 심판은 느닷없이 타임을 선언해버렸다.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 심판은 경기를 중단한 뒤 아무 일 없는 듯 2루를 작은 빗자루로 쓸었다. 플레이는 중단됐다. 이영구는 숨겨뒀던 공을 장명부에게 건넬 수밖에 없었다. 삼미 김진영 감독이 심판의 이유 없는 타임 선언에 항의했지만 규정상 틀린 것은 없었다. 심판은 사전에 문제의 소지를 없앴을 뿐이었다. 주의환기 규정도 어기지 않았다.

사건의 당사자였던 김광철 전 KBO 심판위원장은 “장명부와 이영구가 상상도 못한 것을 해서 문제가 됐다. 그래서 히든볼을 놓고 KBO에서 대책회의를 했다.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삼미의 경기 때는 심판들이 집중해서 봤다. 정확하게 어떤 경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경기에서 장명부가 또 마운드에서 어슬렁거리고 이영구가 주자 뒤에서 슬슬 걸어왔다. 공이 어디 있는지 심판도 잘 몰랐다. 또 히든볼을 하는 것 같아서 문제를 사전에 막기 위해 일부러 타임을 걸어버렸다. 장명부 이후 히든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도 바꿨다”고 기억했다.


● 장명부-이영구가 1983년 한국프로야구에 선보인 히든볼

1983년 KBO리그는 재일동포선수를 영입했다. 우리보다 앞선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재일동포선수를 팀마다 2명씩 영입해 새로운 볼거리도 주고 전력도 평균화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많은 재일동포선수가 한국 땅을 밟았다. 가장 성공한 팀은 투수 주동식-포수 김무종을 영입한 해태였지만, 화제를 모은 팀은 삼미였다.

히로시마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장명부가 왔다. 이때 장명부가 고집해서 데려온 선수가 바로 이영구였다. 히로시마 소속으로 김무종과 동기였다. 당시 한국야구에 비해 두 수는 앞서 있던 장명부는 다양한 기량을 보여줬다. 이 가운데 하나가 히든볼이었다.

1983년 4월 6일 인천구장에서 MBC-삼미의 시즌 첫 맞대결이 벌어졌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주역 김재박은 1982시즌 막판부터 MBC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기룡과 장명부의 에이스 맞대결이었다. MBC가 1-0으로 앞선 9회초, 이미 3안타를 쳤던 김재박은 선두타자로 나와 2루타를 때렸다. 이 공을 잡은 삼미 좌익수 김대진이 유격수 이영구에게 건넸다. 이영구는 공을 장명부에게 주는 척하고 숨겼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다양한 꼼수를 경험했던 장명부가 능청스럽게 연기를 했다. 마운드 부근에서 스파이크 끈을 묶는 척했다. 만일 장명부가 마운드에서 공 없이 투구동작을 취했더라면 타자와 주자를 기만한 보크였다. 김재박은 2루를 벗어나 있었는데 이영구가 다가와 태그했다. 아웃. MBC 백인천 감독이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꼼수였지만, 룰에 어긋나는 행동은 없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처음 나온 히든볼이었다.

이규석 전 심판은 “장명부가 다양한 꼼수를 부렸다. 당시만 해도 우리 프로야구가 어수룩해서 빈틈이 많았다. 장명부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말썽이 났던 여러 가지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봤다. 한 번은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포수의 사인도 받았다. 참 재미있는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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