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박태환 “거짓된 사람으로 은퇴할 순 없다”

입력 2015-08-14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도핑 파문’에 휘말린 박태환은 12일 스포츠동아와 만나 자신의 꿈과 재기, 올림픽 등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는 “진심의 힘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스포츠동아DB

■ ‘도핑의 덫’에서 길 찾는 마린보이 박태환


훈련 환경이 어렵다는 말 자체도 사치
사람이 아직 무섭지만 이겨내야 할 숙제
체력·지구력 키워 정상컨디션 회복 중
내 성공이 거짓 아니라는 것 증명할 것

유독 여운이 길게 남았던 인터뷰 말미, 넌지시 물었다.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느냐”고. 눈을 똑바로 마주친 그는 “그렇다”고 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꺼내는 데 조심스러워하던 수영선수 박태환(26·인천광역시청)이 가장 분명하게 답한 순간이었다.

사실 부담스러운 것은 선수뿐만이 아니었다. 운동선수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도핑 파문’에 휘말린 박태환을 둘러싼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인터뷰를 요청할 때도 성사될 것이란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이라고 여겼다. 이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지낸 며칠 후 막상 “(만남에) 응하겠다”는 답을 듣자, 오히려 부담이 더 커졌다. 대체 무엇을 물어야 할지, 또 그에게서 어떤 답이 나올지 이런저런 고민이 스쳐갔다.

박태환과는 12일 오후 서울 강남에 위치한 그의 소속사(팀 GMP)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서히 몸이 올라오고 있음을 확인하고, ‘물감’을 얼마간 되찾았기 때문일까. 예전보다는 좀더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옅은 미소 속에 간간히 터져 나오는 짙은 한숨에는 앞날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 몸부림&사람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렇게 만나는 것이 많이 조심스럽고 힘겹다. 하지만 넓게 보면 더욱 힘을 내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처음 (도핑 파문이) 시작됐을 때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주변과의 만남을 자꾸 피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6월부터 훈련을 시작했는데.

“오랫동안 쉬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초반보다 확실히 좋아지긴 했다. 준비한 단계별 과정이 있는데, 아직은 적정선에 머물고 있다. 이를 뛰어넘으려고 하지만 쉽진 않다. 일단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선 해외든, 어디든 맘껏 훈련할 수 있는 곳으로 갔으면 하지만 아직 상황이 여의치 않다.”


-전담팀도 없고, 국내훈련 여건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다.

“솔직히 지금 이야기도 아주 조심스럽다. 마치 하소연처럼 비쳐질까봐 걱정스럽다. ‘훈련’이란 간단한 단어를 꺼내는 것도 어렵다. 사치다. (올림픽 출전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정말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밖에 드릴 것이 없다.”


-컨디션을 되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좋은 훈련프로그램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민상(55) 감독님과 함께 훈련하지만, 아직 나만을 위한 훈련 계획은 없다고 봐도 된다. 체력과 지구력을 먼저 끌어올려야 한다. 쉰 시간만큼 훈련해야 예전의 몸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다. 향후 한두 달 정도면 제로(0)베이스로 세팅될 것 같다.”


-인간관계도 어려워졌을 텐데.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박태환’이란 이름에 빛이 날 때는 모두가 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며 내 자신도 위축됐고, 마음의 문도 많이 닫혔다. 때론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이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다시 일어서고 성공하면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다만 좀더 사람을 가리게 될 것 같다.”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을 해봤나?


“예전에는 정말 몰랐다. 다른 것도 무서운 게 많은데, 지금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 성격상 한 번 친해지고 익숙해지면 한 없이 퍼주는 타입이다. 이제 그러면 안 되겠구나 싶다. 모든 것들이 잘 풀리더라도 선을 긋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재기&올림픽


-영웅 이미지가 퇴색됐다. 은퇴도 고민했다고 들었다.

“솔직히 은퇴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데 마음을 바꿨다. 운동선수가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떠나는 것과 이처럼 치명상을 입은 채 은퇴하는 건 천양지차다. 내가 만약 떠났다면 후자에 속한다. 내가 거짓된 힘으로 성공한 선수가 아니라고,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얻은 성과라는 걸 확인해드리고 싶었다. 편견과 오해를 지우고 싶다.”


-지금 자신에 가장 필요한 바는?

“말이 아닌 행동이다. 징계도 일단 내년 3월 끝난다. 향후 시합을 더 나설 수 있을지, 결국 뛰지 못할지는 확실치 않지만 일단 준비는 해야 한다. 내게 손가락질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단 한 분이라도 소리 없이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진심어린 마음과 목표로 노력하겠다.”


-정말 확실히 재기할 수 있을까.

“역시 내게 사치스러운 단어다. 딱히 떠올리지 않고 있다. 그냥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다보면 자연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다. 올림픽 메달을 장담할 순 없어도, 다시 한 번 터치패드를 힘차게 찍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


-올림픽은 어떤 의미인지.

“지금 돌이켜보면 올림픽에서 내가 영화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시나리오 없는 대본을 채우는 사람이었다. 2008년 베이징에서 금메달, 4년 뒤 런던에서 은메달 등 추억이 남다르다. 환희와 절망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인생을 배웠다. 물론 지금도 배우고 있지만.”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1년여 남았다.

“최근 러시아 카잔 세계수영선수권을 TV로 지켜봤다. 밤늦게 중계를 보며 박수를 치다 문득 내가 있는 곳이 현장이 아닌 집이라는 게 너무 묘하고 어색했다. 딱히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다. 특히 마이클 볼(53·호주) 감독님과 함께 훈련을 받은 미치 라킨(22·호주)이 이번 대회 남자 배영 100·200m 2관왕을 했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축하한다’고 했다. 너무 보고 싶더라.”

박태환은 50m 정규 레인이 마련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수영장에서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6월 1일 첫 훈련 모습. 스포츠동아DB



-6월 1일 50m 레인 첫 훈련을 하며 ‘지금은 목표가 없다’고 했다. 지금도 그런가?

“그때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 막연한 생각은 전혀 없지 않았지만, 차마 이를 내뱉을 수 없었다. 이야기해봐야 좋을 것도, 좋게 봐줄 분도 없었다. 이제 조금씩 꿈은 꾼다. 내년 3월 징계가 풀리면 4월쯤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몰라도 열심히 준비한 걸 보여드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