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스퀴즈는 타이밍…신호도 은밀하게

입력 2015-08-1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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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의 ‘개구리 점프’로 유명해진 스퀴즈번트는 타자의 정확성과 주자의 창의력, 벤치의 결단 등이 두루 필요하다. LG 오지환이 8일 잠실 두산전 9회 정성훈의 스퀴즈번트 때 홈으로 쇄도해 득점을 올리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최고의 긴장감 ‘스퀴즈 플레이’

맥그로가 스퀴즈 등 현대야구에 접목

1982년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 번트’
韓야구 역사에 가장 기억 남는 스퀴즈

타이밍 눈치 못채게 변칙사인도 불사
류중일감독 “주자의 몸 손가락으로 꾹”


9일 마산 KIA-NC전에서 KIA 김기태 감독이 좀처럼 보기 드문 결정을 내렸다. 4회초 1사 3루

풀카운트서 스퀴즈번트를 시도해 성공한 것이다. 볼카운트 3B-1S서 이미 한 차례 스퀴즈를 해 파울이 됐는데도 같은 작전을 고집했다. 스리번트는 여러 위험을 동반한다. 여기에 대부분의 팀이 한 시즌 많아야 3∼4차례밖에 시도하지 않는 스퀴즈를 섞었다. 게다가 김 감독의 지도자 인생 첫 스퀴즈였다. 야구는 점수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뽑느냐가 중요한 ‘타이밍의 경기’다. 지금 이 순간 꼭 점수를 내야겠다고 벤치가 결정했을 때, 선수가 그것을 잘 실행해주는 팀은 강팀이다.

8일 LG 오지환은 두산과의 잠실 라이벌전에서 9회초 정성훈의 세이프티 스퀴즈번트 때 결승점을 올렸다. 정성훈은 미리 번트 자세를 취한 뒤 움직였다. 이 타구를 두산 수비수가 잡아서 1루로 던지는 사이, 스타트 준비를 하던 3루주자 오지환은 가속도를 붙여 홈을 파고들었다. 박용진 전 LG 2군 감독은 “세이프티 스퀴즈”라고 밝혔다. 야구 룰에 해박한 박기철 스포츠투아이 부사장은 “굳이 설명하자면 딜레이드 세이프티 스퀴즈 플레이다. 과거에도 이런 플레이가 있었겠지만, 워낙 드물어서 용어로 정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수를 ‘쥐어짠다’는 스퀴즈 플레이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스퀴즈 플레이의 탄생

야구에서 처음 번트가 탄생한 것은 19세기 후반. 이어 네드 헨론 감독이 히트앤드런, 번트앤드런, 중계플레이, 수비포메이션등으로 현대야구의 기초를 만들었다. 원조 ‘스몰볼’인데, 이를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람이 존 맥그로다. 20세기 초 뉴욕 자이언츠를 맡아 스퀴즈번트와 딜레이드 스틸 등 전술을 더욱 다양화시켰고, 현대야구의 토대를 다졌다.

한국야구 역사에서 가장 기억나는 스퀴즈는 1982년 나왔다. 김재박이 국내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한일전에서 성공시킨 ‘개구리 점프 번트’다. 1-2로 뒤진 8회 1사 3루서 일본 투수 니시무라의 피치아웃 때 몸을 던지며 번트를 대 2-2 동점을 만들며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었다. 당시 대표팀을 지휘했던 어우홍 감독은 “사인 미스”라고 했지만, 때로는 실수가 상상치 못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야구다.

김재박이 했던 번트가 ‘수이사이드 스퀴즈’다. 투수가 피칭 동작에 들어가자마자 3루주자가 홈으로 뛰어들고, 타자는 번트로 공을 땅에 떨어트려 주자가 득점하는 작전이다. 득점 확률은 높지만, 상대의 작전 간파에 따른 피치아웃 또는 타자가 번트에 실패할 경우, 번트 타구가 떠서 수비수에게 잡힐 경우 실패한다. 최악의 경우 병살이다. 그래서 자살(수이사이드)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8일 정성훈의 번트에선 타자보다 주자 오지환의 창의성과 결단이 빛났다. 세이프티 스퀴즈는 타자의 번트를 보고 확신이 있을 때만 주자가 홈을 노린다. 득점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3주주자가 아웃될 확률도 함께 낮아진다. 12일 목동 NC-넥센전 4회말 3루주자 서건창의 주루사는 세이프티 스퀴즈의 실패 사례다. 타자 박동원의 책임처럼 보였다. 타자에게 미리 자신의 작전 의도를 알린 뒤 실행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 스퀴즈 상황에서 투수와 상대팀은 어떤 것을 해야 하나?

삼성 류중일 감독이 털어놓은 스퀴즈번트와 관련된 에피소드. 선동열 전 감독 시절 3루에서 주루코치를 맡았던 류 감독은 한화 류현진을 상대로 실패했던 스퀴즈를 떠올렸다. 정확한 날짜와 상황은 기억하지 못했다. 스퀴즈 사인이 떨어지자 류 감독은 3루주자에게 다가가 신호를 줬다. 류현진이 피칭모션에 들어가는 순간 주자가 뛰어들었지만 그 순간 류 감독은 작전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류현진이 오른발을 드는 순간 주자가 뛰었는데, 1루를 보면서 피칭 모션에 들어간 류현진의 눈이 3루를 보고 있었다. 자신의 등 뒤에 주자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곁눈질을 통해 보던 센스가 대단했다. 그 순간 내 눈이 딱 마주쳤다. 류현진은 피치아웃을 했고 주자는 아웃됐다. 실패여서 지금도 기억한다”고 털어놓았다.

감독과 선수들은 스퀴즈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안다. 선수들은 긴장한다. 투수는 간혹 견제구로 자신의 감이 맞는지 확인한다. 수비 입장에선 상대 벤치의 맥을 정확히 짚어서 막아내면 어떤 플레이보다 희열을 느낀다. 이희수 전 한화 감독은 이런 감각이 뛰어났다. 상대 벤치의 사인도 잘 훔쳐냈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 몇 차례 스퀴즈를 성공시키며 상대 벤치를 압박했다. 같은 1점이지만, 희생플라이로 내주는 점수와 스퀴즈로 내주는 점수는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천양지차다. 포커페이스인데다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해 상대가 감히 예측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스퀴즈를 지시한다.

경험이 모자란 벤치에선 많은 사람이 스퀴즈 사인이 나왔는지 알게 만든다. 시끌벅적하던 덕아웃이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뭔가 평소와 다르면 작전이 나왔다는 신호다. 상대팀뿐 아니라 같은 팀 선수들도 모르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 포인트다. 메이저리그의 어느 베테랑 감독은 그래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인을 냈다. 감독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부상선수를 벤치에 앉혀뒀다가 어느 순간 불렀다. 그 선수는 이유도 모르고 감독에게 갔지만, 그것이 바로 스퀴즈 사인이었다. 류중일 감독은 더 은밀한 방법을 알려줬다. 주자에게 다가가서 등이나 목을 만져주면서 손가락으로 눌러서 신호를 줬다고 했다. 사전약속은 필요하지만, 들킬 염려가 없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스퀴즈의 적 피치아웃


스퀴즈 상황이 오면 수비팀의 긴장감은 커진다. 최선의 방어책은 사전에 작전을 간파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해도 배터리가 센스를 발휘하면 득점을 막을 수 있다. 스퀴즈 때 공격팀에서 가장 난감한 상황은 공이 예측한 대로 오지 않는 경우다. 투수의 컨트롤이 나빠서 원바운드 볼이 올 수도 있고, 투수가 센스 있게 피치아웃을 할 때도 있다.

피치아웃은 스퀴즈나 히트앤드런 때 수비 팀이 택하는 방어카드다. 대부분의 투수들은 피치아웃을 타자의 바깥쪽 높은 곳으로 한다. 타자의 눈에서 공이 멀어지고 포수가 잡기도 편한 방향이다. 물론 창의적 피치아웃도 있다. 기자가 직접 본 경기다. 1996년 일본프로야구 경기에서 요코하마의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는 타자의 몸쪽 높은 곳으로 피치아웃을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타자 머리 위로 오는 빠른 공에 배트를 대기가 바깥보다 더 힘들다”고 답했다.

류중일 감독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자, “피치아웃을 타자 얼굴 쪽으로 하는 것이 어떤지 생각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얼굴로 빠른 공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리며 피하게 돼 있다. 만일 몸쪽 피치아웃을 타자가 피하지 않고 맞으면 볼 데드로 경기가 중단되니까 3루주자의 득점도 불발된다. 의도적으로 타자주자가 공을 맞으면 아웃 판정도 이끌어낼 수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 가능성은 다양하지만, 실전은 다르다. 류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 투수들에게 불펜피칭 후 매번 10개 정도씩 피치아웃 훈련을 시키고 있다. 평소에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실제 경기에서 패대기치는 경우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야구는 준비의 경기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잘 준비하는 삼성은 역시 강팀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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